군인을 믿었다, 그게 함정이었다

사칭 범죄의 실체와 국방부의 대응

최근 들어 대한민국 곳곳에서 ‘군인을 사칭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누군가는 보급관을 사칭해 업체에 급히 생수 납품이 필요하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총무담당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카드결제를 대신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상대방은 단정한 말투에, 그럴듯한 계급과 소속 부대명을 말했고, 심지어 군용 공문서까지 첨부하기도 했다. 처음엔 의심하지 않았던 피해자들은 입금을 한 뒤에야 상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두 ‘군복’을 입은 듯한 사기꾼에게 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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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군인의 이름과 직책을 사칭한 사기 범죄는 그 수법이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국방부조사본부에 따르면, 2023년 이후 전국에서 접수된 군 사칭 범죄는 이미 400건을 넘었으며, 피해금액은 총 57억 원에 이른다. 피해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충북 청주, 경북 구미,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자 대부분은 납품 업체, 중소 자영업자, 혹은 군과 직접 거래를 해본 적 없는 민간인이다. 상대가 군인이기에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사기범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방식은 부대 납품을 빙자한 금전 요구다. 자판기, 생수, 간식류 등을 군부대에 공급하고자 하는 업체에게 접근해 ‘긴급 납품이 필요하다’며 선결제나 대리 입금을 유도하고, 이후 연락을 끊는 식이다. 어떤 경우엔 군용 계약서나 보급 요청서처럼 보이는 문서를 보내와 신뢰를 높였다. 이 문서들엔 부대명과 담당자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대부분은 위조된 것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와 같은 범죄가 반복되자, 국방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2025년 5월 14일, 국방부는 국민 누구나 군인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24시간 대응체계를 마련했다. 국번 없이 1303번으로 연결되는 ‘국방헬프콜센터’에 군인을 사칭한 인물의 이름, 계급, 소속부대, 전화번호 등을 제공하면, 국방부 인사기록과 대조해 해당 인물이 실제 군인인지 여부를 확인해주는 것이다.


만약 정보가 일치하지 않으면, 헬프콜센터는 즉시 사칭 가능성을 민원인에게 알리고 경고한다. 반대로 정보가 일치할 경우, 해당 군인에게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그 결과를 다시 신고자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다만 군인의 신상정보나 구체적 소속은 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으며, 진위 여부만 판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사기 수법의 주요 유형도 공개했다. “총무계장이니 대리결제를 해달라”, “급히 생수와 간식 납품이 필요하다”며 ‘선입금’을 유도하는 방식은 매우 흔한 패턴이다. 갑작스럽게 연락이 오고, 결제를 요구하며, 이후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는 대부분 노쇼 사기의 가능성이 높다. 공문서를 보내왔다 하더라도, 문서의 서명이나 직인, 연락처 등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으면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부대와 이름을 도용해 가짜 계약서를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사칭 범죄가 더 큰 문제로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한 금전 피해를 넘어, 군이라는 조직의 공공성과 신뢰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은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사회적 자산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신뢰를 역이용하는 사기꾼들이 등장하고 있다. 군복은 누군가에게는 자부심과 희생의 상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교묘한 사기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군의 신뢰를 지키는 마지막 수단은 결국 국민의 주의와 판단이다. 국방부는 모든 국민이 다음과 같은 원칙을 기억하길 당부한다. 첫째, 군인을 자칭하는 누군가가 금전을 요구하거나 납품 대금을 먼저 보내달라고 말할 경우, 반드시 1303에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둘째, 문서나 계약서가 왔다 하더라도 서명, 연락처, 공식 직인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셋째,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껴진다면 국방헬프콜센터뿐 아니라 112나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에도 즉시 신고해야 한다.


군인을 사칭한 이 사기 범죄는 단지 돈을 노린 범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의 권위와 국민의 신뢰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행위다. 정부는 24시간 대응체계를 통해 이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려 하지만, 결국 가장 강력한 예방책은 ‘모두의 경각심’이다. 의심 없이 믿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군복을 입은 말’이라도, 반드시 확인하고 경계해야 할 시대다.


신뢰는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를 지키는 첫 번째 수칙은, "의심될 때는 반드시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군복을 입은 진짜 군인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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