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햇볕이 내리쬐는 점심시간, 외출 나온 군인들이 편의점 앞에서 어슬렁거립니다. 식당 앞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안내문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그들이 복무하고 있는 이곳은 '주소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소지에 묶인 소비쿠폰, 군인은 그림의 떡
정부는 지난 7월, 민생회복을 위한 소비쿠폰을 전국민 대상으로 지급했습니다. 대상에는 현역 군인도 포함됐습니다. 전국에서 복무 중인 47만 명의 청춘들, 그들도 분명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정책의 수혜자입니다.
하지만 쿠폰 사용은 '주소지'에서만 가능하다는 규정 탓에, 군인들에게 이 소비쿠폰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군인들은 대부분 군부대 인근 지역에서 외출과 외박을 하며 지역경제의 실질적인 소비 주체가 됩니다. 하지만 이 쿠폰은 고향 주소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화천에서 근무하는 이등병이 그 쿠폰을 쓰려면 휴가를 받아 서울 집에 가야 쓸 수 있는 겁니다.
“PX 말고는 쓸 데가 없어요.”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은 군부대 안 PX(군 매점). 하지만 PX는 물품 구성이 제한적이고, 지역 상권과는 무관한 폐쇄적 공간입니다. 실제로 많은 군인들은 소비쿠폰이 지급됐다는 사실은 알지만, 사용할 방법이 없어 전자지갑 속 쿠폰을 그냥 방치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도, 군인도 놓친 ‘반쪽짜리 정책’
“그걸 쓸 수 있게만 해주면, 군인 손님은 진짜 엄청 좋아하죠.” 화천군의 한 식당 주인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습니다. 실제로 군부대 인근은 민간 소비자보다 군인의 소비가 핵심입니다. 외출과 외박 때마다 편의점, 치킨집, 미용실, 카페 등 지역 자영업자들은 군 장병 덕분에 숨을 쉽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군인의 실질 소비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주소지’라는 기준만 고집한 결과, 지역 상권도, 청년 병사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입니다.
소비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군인’
대한민국의 20대 청년들이 군복을 입고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이들은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종종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정책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사용이 불가능하고
그 현실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것
소비쿠폰 하나가 말해주는 진실은, “군인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시민”이라는 현실입니다.
실효성 있는 민생회복이란 무엇인가
강원도의회 박대현 의원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소비쿠폰이 진짜 효과를 내려면 PX에서만이 아니라 지역 소상공인들도 혜택을 볼 수 있게 사용처를 복무지로 확대해야 합니다.” 실제로 강원도와 화천군은 행정안전부에 주소지 외 복무지 사용 허용을 공식 건의했습니다. 이 제안은 단지 행정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생경제 회복과 병영복지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복무는 전국, 권리는 주소지?
군 복무의 특성상 병사들은 전국 각지로 배치됩니다. 주소지는 대구인데 강원도에서 복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소비’는 주소지 기준, ‘복무’는 전국 순환 배치라는 이중 구조 속에서, 병사를 소비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병사는 국방의 주체일 뿐, 경제의 주체는 아니라는 잘못된 전제가 여전히 정책 안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정책이 의도를 잃는 순간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코로나 이후 침체된 내수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주요 전략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정책의 핵심은 ‘소비 유도’입니다. 하지만 현역 병사 47만 명에게 지급된 쿠폰이 실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명백한 정책 낭비이자 행정 실패입니다. 예산은 투입됐지만, 소비는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도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탓입니다.
“군인은 사회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군인들도 국가의 일원이고, 사회의 구성원이며, 청년 시민입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군복은 일시적인 것이고, 그들의 소비는 실재하는 경제 활동입니다. 군 장병이 외출 나온 지역에서 음식 하나, 물건 하나를 사면서 느끼는 ‘소속감’은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가 자신을 인정해준다는 작은 증표입니다.
진짜 민생회복은 모든 시민을 포함해야 한다
소비쿠폰 하나. 작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가 군인을 배제할 때, 우리는 더 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군인은 정책에서 늘 뒤로 밀리는가?
왜 행정은 군인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왜 복무는 전국인데, 혜택은 집에서만 가능한가?
군인은 국가의 의무를 대신 이행하는 시민입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들에게도 온전한 권리와 소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합니다.
민생회복이라는 말이 군인에게도, 자영업자에게도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지금이라도 정부는 정책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합니다. 민생회복은 지역이 아니라, 사람에게 주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