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격리’는 징계가 아니었다
2025년 8월 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한 해군 부사관의 진정을 받아들여 “장기간 숙소에 대기시키는 분리 조치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분리’ 조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고립’이었고, ‘사전징계’처럼 기능했으며,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조직의 무책임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였다.
해군은 규정을 따랐다고 말하지만, 인권위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건 충분하지 않았다.”
도서지역에서 벌어진 고립의 시작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도서 지역에 근무 중이던 해군 부사관 A씨는 2024년, 자신이 소속된 부대의 병사로부터 병영부조리로 지목되어 진정을 당한다.
군 내부는 신속히 ‘가·피해자 분리 조치’를 내렸다. A씨는 그 즉시 영내 숙소에 격리됐다.
여기까진 군 규정에 따라 작동한 절차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A씨는 열흘 넘는 시간 동안 사실상 ‘숙소 밖 외출 금지 상태’로 지내야 했고, 식당도 이용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열흘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겐 ‘격리된 열흘’이었다.
고립된 숙소, 분리가 아닌 방치였다
해군 측은 “피해자와의 접촉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A씨가 이용하던 간부식당조차 차단된 데다가, 따로 마련된 공간 없이 숙소에만 머물러야 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분리 이상의 조치였다.
부대장은 “A씨 신상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상급부대에 보고하지 않았고, 도시락을 제공하려 했으나 A씨가 스스로 거절했다”고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이를 ‘합리적 조치’로 보지 않았다. 특히 "분리 조치의 장기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점", "열흘 넘게 고립시킨 점"을 지적하며 명확히 ‘부당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의 판단: “신체 자유와 행복추구권 침해”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위원회는 이 사건을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다.
분리 조치 자체는 군 내부 규정에 따른 합법적 행위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장기화되거나 적절한 조치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공식적인 처벌’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A씨는 징계를 받은 것도,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열흘 넘게 사실상 수용자처럼 지내야 했다.
규정과 현실 사이의 간극
군은 ‘규정대로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규정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운용했는가’가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규정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 인간을 격리하거나 침묵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특히 도서지역처럼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분리’ 조치가 곧 ‘격리’ 또는 ‘배제’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
해군의 대응은 충분했는가
인권위는 해군참모총장에게 두 가지를 권고했다.
당시 분리 조치를 시행한 부대장 B씨에 대한 ‘주의 조치’
도서지역 소규모 부대에서 유사 상황 발생 시, 분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 마련
이 권고는 단순한 주의 촉구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 군이 ‘인권 보호’라는 개념에 대해 얼마나 미숙한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분리’가 곧 ‘벌’이 되어버리는 군의 인식과 시스템은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피해자 보호인가, 가해자 처벌인가… 분리 조치의 애매한 위치
군은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라는 대전제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 분리의 방법, 범위, 기간, 심리적 보완 장치는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 A씨는 결국 ‘처벌’처럼 느껴지는 조치 속에 방치됐고,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고립됐다. 분리는 물리적인 거리일 수도 있지만, 심리적 거리감, 소통 단절, 낙인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 경계가 모호할수록 군은 쉽게 책임을 회피하고, 인권은 쉽게 침해된다.
병영문화 혁신은 ‘규정 정비’보다 ‘운용 감수성’
A씨의 사례는 병영문화 혁신이 단순히 새로운 규정 제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진짜 혁신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있다. 단순히 규정이 있다는 이유로, 그 뒤에 숨어선 안 된다. 인권위의 지적처럼, "분리 조치를 운용한 자의 태도와 대응 노력"이야말로 군 인권 보호의 핵심이다.
고립된 공간, 지워진 시간
A씨가 보낸 열흘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A씨에게 ‘신뢰 상실의 시간’이었고, ‘불안과 고립의 시간’이었다. 국가는 국민에게 병역을 요구하며, 동시에 ‘국민으로서의 권리’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 복무의 의무는 헌법이 부여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국민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이다.
군은 더 섬세해져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부당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 군 조직이 인권 감수성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규정대로 했습니다’라는 말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군은 더 섬세해야 한다.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더 신속하고, 더 공정하고, 더 투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립된 채 침묵하고 있는 누군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