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혁’이라는 이름의 칼날
2025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군방첩사령부(이하 방첩사)는 전면적 개혁의 칼날 위에 서 있다. 국방부와 국정기획위원회는 방첩사에 방첩 기능만 남기고, 수사·보안·정보 기능은 타 조직으로 이관하거나 폐지하겠다고 공식화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대규모 준장 보직을 축소하고, 신임 지휘부가 속도감 있게 개혁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개혁의 명분은 분명하다. 방첩사가 계엄령 사태에서 보여준 정치 개입과 권력 남용,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행태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군 안보 역량과 내부 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역설적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2. 방첩의 본질과 업무 분리의 난제
‘방첩(防諜)’은 간첩 활동을 막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방첩은 단순히 “첩보 수집”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정보와 보안, 수사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번 개혁안대로라면,
수사 기능은 국방조사본부로,
정보·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와 각 군으로,
방첩 기능만 방첩사에 남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기능을 인위적으로 분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소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속담처럼, 기능 분리 과정에서 방첩사의 본질적 역할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신뢰받지 못하는 이관 대상들
더 큰 문제는 이관 대상 부대들에 대한 신뢰 부족이다.
국방정보본부는 과거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등 기밀 관리 실패로 기강 해이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국군정보사령부에 대해 방첩사가 감찰하도록 조치한 바 있다.
국방조사본부 역시 계엄령 사태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동안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을 해왔지만, 전문 수사 역량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조직에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내란·외환·반란죄 등 중대한 안보 사건 수사권까지 넘기면 오히려 더 위험한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즉, 문제 있는 조직으로 기능을 옮기는 것이 과연 개혁인지, 단순한 권한 재배치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4. 사라지는 군 내부 견제 장치
방첩사가 가진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군 내부 견제와 감찰이다.
대령 이상 장교 인사 검증,
부대 부조리 조사,
지휘관 특이동향 점검 등은 방첩사만이 수행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조차도 방첩사를 존속시켰다. 그러나 이번 개혁으로 이러한 기능이 사라질 경우, 문민 국방부 장관은 군 내부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특정 군 출신이나 특정 인맥이 정보권을 독점하고, 장관은 ‘깜깜이’ 속에서 국방을 운영할 위험이 있다.
5. 방첩사의 ‘잘못’과 ‘저항’의 이면
비상계엄 사태 당시 방첩사 일부 수뇌부가 정치적 개입에 연루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선 요원 164명은 다른 방식으로 명령을 사실상 거부했다. CCTV에 일부러 모습을 노출하거나,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고 영수증을 챙기는 방식으로 ‘불복종’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조직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소수 지휘부의 문제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방첩사 개혁은 분명 필요하지만, 조직 자체를 무력화하거나 해체에 가까운 축소로 가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논쟁이 뒤따른다.
6. 군 통제와 문민 장관의 역설
민주주의 국가에서 문민 국방장관은 군을 통제하는 최후의 장치다. 그런데 군 내부에서 장관을 보좌하고, 군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방첩사가 약화되면, 오히려 장관의 통제력이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즉, 군을 견제하기 위한 개혁이 군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적 통제 원리와도 충돌할 수 있다.
7. 앞으로의 과제: 균형 있는 개혁
방첩사 개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방첩 기능의 실효성 유지: 간첩 대응과 내부 감찰 역량을 약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관 대상의 신뢰성 확보: 정보본부와 조사본부의 기강 확립, 외부 감시체계 강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기능 이관은 위험하다.
문민 통제 장치 보완: 국방부 직할의 별도 감찰·보안 기능을 유지하거나, 방첩사의 축소 기능을 장관 직속 기구로 편입해 장관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
투명한 외부 감시: 국회와 민간 전문가의 상시적 감사 체계를 통해 군 권력기관이 또 다른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맺음말: 개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방첩사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의 본질은 권력의 재배치가 아니라, 책임의 강화에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무조건적인 쪼개기와 권한 이관은 오히려 군의 안보 역량과 내부 통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