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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비예비군 없이는 미래 전쟁을 버틸 수 없다

by 김재균ㅣ밀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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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력 감소라는 현실

대한민국 군 병력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2019년 56만 명 수준이던 상비군은 불과 6년 만인 2025년 7월에 45만 명으로 감소했다. 국방부가 계획했던 “2028년까지 상비군 50만 유지”는 이미 2023년에 무너졌고, 앞으로의 전망은 더 암울하다. 2040년이 되면 상비병력 30만 명조차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출산과 인구 절벽이 가져오는 병력 자원 부족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군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예비군 제도다. 문제는 현재의 예비군 체제가 미래 전쟁의 양상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2. 이스라엘의 사례 ― 현역보다 강한 예비군

이스라엘은 “현역이 버티면 예비군이 승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비군 전력이 강력하다. 현역 17만 명에 비해 예비군은 46만 명, 무려 2.5배 규모다. 남성은 45세, 여성은 34세까지 연간 55일간 훈련을 받으며, 실제 전투를 경험하는 경우도 많다. 예비군이 단순한 보조 전력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떠받치는 ‘실질적 주력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10월 이후 하마스·헤즈볼라·이란까지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전선을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예비군 체제 덕분이다. 우리와 달리 이스라엘은 예비군에게 총기 휴대, 창업 지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사회적으로 존중한다.


3. 장비와 물자가 곧 전투력

우리나라 예비군 제도는 아직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대표적으로 훈련 시 지급되는 장비가 현역 시절과 달라 전투 감각이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K–2 소총을 사용하던 병사가 예비군 훈련에서 구형 M–16을 지급받는 현실은 비효율적이다. 예비군이 현역 때 쓰던 장비와 물자를 그대로 지급하는 것, 그것이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전투력 유지 방법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훈련 일수를 늘리는 것보다 ‘익숙한 장비’를 다시 쥐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몸이 기억하는 습관만큼 실전에 가까운 훈련은 없기 때문이다.


4. 상비예비군, 병력 절벽을 메울 유일한 카드

우리 군은 2014년 상비예비군 제도를 도입했지만 국민적 인지도는 낮다. 상비예비군은 자원자를 대상으로 연 30일 이내 복무하는 단기형, 최대 180일까지 가능한 장기형으로 운영된다. 보상비도 지급되지만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간다”는 애국심이 지원 동기라는 점이 강조된다.

미국은 상비예비군을 훨씬 체계적으로 운영한다. 국방예산의 9%를 투입해 연방예비군과 주방위군을 관리하며, 장비 수준도 상비군과 동일하게 유지한다. 무엇보다 예비군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USERRA(예비군 보장제도)를 법으로 마련하고, 고용주와 예비군의 갈등을 조정하는 ESGR 기구까지 운영한다. 반면 한국은 상비예비군들이 여전히 직장에서 눈치를 보며 훈련에 참여해야 하는 현실이다.


5. 학생예비군, ‘최정예 자원’의 방치

현재 예비군 270만 명 중 약 30~40%는 학생예비군이다.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체력과 전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시기지만, 연 8시간 기본훈련만 받고 있다. 사실상 실전 투입 가능성이 높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학생예비군도 동원예비군 수준으로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학업권 침해 논란이 예상되지만, 대학 학사 일정과 충돌하지 않도록 보장만 된다면 안보 차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6. 현대전에 맞는 훈련 필요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예비군 훈련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참전 경험이 있는 한 예비군은 “드론이 머리 위를 떠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조차 훈련받은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예비군 훈련은 여전히 재래식 전술에 머물러 있어, 현대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드론, 전자전, 사이버전, 도시전 등 새로운 전장 환경에 맞는 훈련이 시급하다. 단순히 사격·전술 훈련을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실시간으로 변하는 전쟁 패러다임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7. 동원의 현실성

예비군의 가장 큰 과제는 실제 전시 동원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는가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예비군이 실전에 동원된 것은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였다. 연평도 포격전조차 동원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총동원령은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쉽게 내리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지역별 부분동원령 개념을 정립하고, 실제로 각 지역 병력을 얼마나 빨리 집결시킬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8. 제도와 인식, 두 축의 변화 필요

결국 병력 절벽 시대의 해법은 두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제도의 혁신이다. 상비예비군을 확대하고, 학생예비군 훈련을 강화하며, 현대전 훈련을 접목해야 한다. 동시에 USERRA와 같은 법적 장치를 마련해 직장·학업과 훈련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예비군을 “귀찮은 짐”으로 보는 문화에서 벗어나, 국가 안보를 지탱하는 핵심 자원으로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처럼 예비군이 존중받고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만, 진정한 ‘전시 동원력’이 보장된다.


9. 결론 ― ‘예비군 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

2040년, 상비병력 30만 명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구절벽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대한민국 군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예비군 체제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예비군은 실전적이지 않고, 제도적 보장이 부족하며, 사회적 존중도 미흡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훈련 확대’보다 현역 때 쓰던 장비 지급, 상비예비군 활성화, 학생예비군 정예화, 현대전 대응훈련 강화, 법적·제도적 보장 확립, 그리고 사회적 인식 전환이다.

“국가가 있어야 기업도 있다”는 상비예비군의 말처럼, 예비군 혁신은 국가 생존과 직결된다. 병력 절벽 시대에 예비군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대한민국 안보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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