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1일, 충북 괴산에 위치한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는 대한민국 육군 창군 이래 처음으로 예비역 하사 임관식이 열렸다. 가을 햇살이 비치는 운동장에는 다시금 군복을 입은 151명의 전역자가 줄지어 서 있었고, 이들은 전역 후 사회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던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다시 한 번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병장에서 하사로 임관되는 순간은 단순한 계급 승진이 아니라, 전시 지휘 간부로서 새로운 책임과 사명을 부여받는 역사적 장면이었다.
이번 임관식이 특별한 이유는 예비군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병으로 전역한 이들은 예비군에서도 병 계급으로만 동원되어 왔다. 이는 병력 규모 확보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휘와 통제를 담당할 간부가 부족한 구조적 문제를 낳았다. 초급간부 지원율이 계속 하락하고, 간부 충원율이 저조해지는 상황에서 간부 중심의 예비군 체계를 새롭게 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23년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예비역 병장이 하사로 임관되어 간부로 편입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고, 그 첫 결과물이 바로 이번 행사였다.
151명의 임관자는 모두 예비역 병장 가운데에서 자원한 인원들로 선발되었다. 현역 복무 시 분대장 경험이나 특급전사 선발, 각종 상훈 내역과 같은 복무 태도를 면밀히 평가했으며, 자격증 취득이나 상비예비군 복무 경험 등 잠재적인 역량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우수 자원을 선발했다. 선발 과정은 단순히 숫자를 채우는 절차가 아니라 전시에 실제로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임관자들의 목소리 속에서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뚜렷하게 묻어났다. 예비역 하사로 임관된 이재윤 씨는 초급간부 지원율 저하 문제를 접하며 군 전투력 향상에 기여하고 싶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윤주현 씨는 전역 후 드론 자격증을 취득한 경험을 살려 전시 드론 운용 부대의 간부로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직업적 선택이 아니라 ‘다시 군인으로 돌아온다’는 의미 있는 결단이었다.
이들이 하사로 임관되었다고 해서 바로 간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임관 직후 이들은 동원전력사령부 예비전력교육단에서 2박 3일간의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리더십 훈련, 보병·포병 전술, 정신전력 교육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간부로서 기본 소양과 전시 지휘 능력을 함양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은 단순한 병력이 아니라 ‘지휘할 수 있는 전력’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밟았다.
임관식 현장은 엄숙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였다. 군악대의 힘찬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임관사령장과 계급장이 수여되는 순간 가족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다시 군인이 되는 모습을 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배우자와 부모들은 벅찬 감동 속에서 가족의 선택을 함께 받아들였다. 고현석 육군참모차장은 축사를 통해 예비역 하사가 되겠다는 숭고한 선택을 한 이들을 진정한 애국자라 칭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제도는 단순히 병장이 하사로 임관되는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 예비군 체계 전반을 재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부족한 간부 동원 자원을 확보하고, 예비군 작전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며, 지휘통제 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나아가 예비군을 소극적인 보충 전력이 아닌 능동적인 지휘 전력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제도가 안착하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교육 기간이 짧아 실제 전시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적인 지휘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며, 단순히 임관 숫자만 늘린다고 전력 공백이 메워지지는 않는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보완과 검증, 그리고 임관자들의 재교육과 훈련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도 이들을 정당하게 인정하고 예우하는 분위기가 뒷받침되어야 제도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 보더라도 이번 제도의 의미는 분명하다. 미국의 경우 주방위군과 예비군이 긴밀히 운영되며, 간부 충원은 전역 장교와 부사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스라엘은 전역자가 자동적으로 예비군 간부로 편입되어 전시 즉각 투입이 가능하다. 대만 또한 간부 중심 예비군 체계를 강화하며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군의 이번 제도는 자발적 지원을 통해 선발한다는 점에서 선택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제도는 미래 전장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드론, AI, 사이버전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전장 환경에서 민간에서 기술을 습득한 예비역 간부들이 다시 군으로 돌아와 역량을 발휘한다면, 이는 곧바로 국가 전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드론 자격증을 보유한 예비역 간부가 전시 드론 부대를 지휘하거나 IT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간부가 사이버 방어 부대에서 활약한다면 그 가치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임관식에 참여한 이들의 선택은 개인의 명예를 넘어 국가 안보를 위한 숭고한 헌신이었다. 사회인이 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군인이다’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고 다시 군복을 입은 이들의 모습은 대한민국 안보의 초석을 다지는 새로운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창군 최초의 예비역 하사 임관식은 아직 작은 첫걸음이지만, 그 의미와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국가가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과연 다시 군복을 입고 전장을 책임지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이번 임용식은 단순한 군 행사를 넘어, 국민 개개인에게 안보와 헌신의 가치를 되묻는 거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