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 2층에 있는 전주 현대옥에서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 국밥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으며 전주 여행의 시동을 걸었다.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기차에 올라타니 정오가 지났다. 기차에서 나는 작은 노트를 꺼내 가고 싶은 곳들을 적어봤다. 네이버 지도에는 즐겨찾기를 다 해놓았지만 노트에 옮겨 적을 여유가 여태 없었다. 기차에서 드디어 끄적일 시간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정한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책'이다. 전주는 오래전부터 한지를 만들던 도시라 요즘에도 '책의 도시'라고 불린다. 토요일마다 책 여행 프로그램이 있을 만큼 전주는 책에 진심이다. 아기자기한 독립서점도 많고, 개성이 분명한 도서관들도 볼만하다고 들었다.
전주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는 곧바로 나의 첫 여행지, 한가네서점으로 향했다. 한가네서점은 오랜 역사가 있는 전주의 헌책방이다. 서점에 들어가면 마치 응답하라 1988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오래된 책들의 냄새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책들은 빼곡히 쌓여있어서 옆에 지나가다 모르고 툭 치면 도미노처럼 줄줄이 쓰러질 것만 같다. 책 사이에 만들어진 복도를 조심조심 움직이는 것도 헌책방의 매력이다. 질서가 없어 보이지만 수많은 책들을 나름대로 질서 있게 정리해 놓으신 사장님은 손님이 책을 찾으면 곧바로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헌책방 사장님은 책만 읽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의 편견이었다. 책방 사장님도 유튜브 본다.
내가 서점에 들어갔을 때쯤 이미 와있던 손님 둘이 있었다. 오랜 친구같이 보이는 중년의 남성 둘이었는데, 기웃기웃하며 '와, 이 책도 있어!'라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아이 같았다. 내가 책 하나하나 보는 내내 두 손님들은 끊임없이 추억 얘기를 했다. 그러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보고 싶은 책을 고르라며 인심을 쓴다. 책의 가격은 총 몇천 오백 원이었는데 거기서 사장님한테 오백 원을 깎아달란다. 나도 모르게 풉 웃어버렸다. 내가 웃는 걸 들었는지 다른 한 친구가 머쓱해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까지 흥정을 하다니, 헌책방 해서 뭐 남는다고.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두 손님들이 떠나고 나서 나는 고요 속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결국 책 두 권을 샀다. 드디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또 지나치지 못하고 작법서를 하나 구매했다. 다름 아닌 한국어외국어대학교의 <우리말 글짓기> 교재인데, 2005 학번의 000 학생의 이름이 있어서 괜히 시간 여행하는 것 같아서 재밌었다. 20년 전에 학생의 손을 탄 책을 보는 게 마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마지막으로 한 권을 집었다 내려놓은 게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을 발견하고 반가워서 살까 하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 그냥 내려놨다. 이건 다음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겠다.
겨우 책 두 권을 샀지만 나는 마치 보물을 찾은 것 같았다. 책을 손에 들고 다니니 마치 전주 현지인 같은 느낌이어서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물론, 한옥마을에 있으니 당연히 나를 관광객으로 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