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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삭 Sep 07. 2023

포르투갈 포르투 해넘이 축제

여행 X 석양: 또 하루를 살아낸 당신을 위한 박수갈채


낮 내내 포르투를 눈부시게 비추던 해가 저물며 마을 지붕들을 닮은 붉은빛을 띠기 시작한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하나 둘 모루 공원 (Jardim do Morro)으로 모여든다. 공원 잔디에 자리를 잡거나 난간에 걸터앉아 한 곳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도우로 (Douro) 강 위로 서서히 내려앉는 해를 다 같이 지켜본다.


해가 마지막 붉은빛을 반짝이며 굽이치는 강 너머로 사라져 갈 때 박수 소리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무대도 음악도 주인공도 없다. 그저 저물어가는 하루를 함께 지켜본 서로에게 보내는 박수와 환호다. 대단한 일을 할 필요도 없이 하루 동안 오롯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리 즐거울 일이다.


하루하루를 어떤 목적지와 동일선상에 올려두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멀리 치닫지 못한 날들을 후회나 혹독한 반성의 대상으로 삼을 때가 많다. 의미 없이 낭비했다며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다음날이면 또 새로 주어진 하루를 미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를 한다. 다가올 내일 때문에 지금 닿아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너무 쉽게 업신여겨진다.


해넘이 시간에는 무너졌던 하루의 가치를 복원시켜 주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나 보다.


포르투에서 함께 해넘이를 바라본 낯선 이들은 내가 어떤 경주를 벌이고 있는지, 하루동안 얼마나 잘 달려왔는지 알 방도가 없다. 나도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언젠간 저물어 갈 짧은 삶 하나하나가 목적의 굴레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로 축복의 대상이 된다.


포르투갈의 시인 마뉴엘 알레그레 (Manuel Alegre)는 석양은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라고 했다. 하루동안 우리가 얻고 잃은 것들이 무엇이든 간에. 해넘이 시간에는 무너졌던 하루의 가치를 복원시켜 주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나 보다.



내일도 아름다운 생이 기다리고 있다.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할.


침실 머리맡에 그날 그곳을 담은 찍은 사진을 두고 있다. 사진 속에 담긴 이들과 포르투의 해넘이를 다시 함께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잠을 해칠만한 어두운 생각들을 쫓아내는 작은 정화 의식이다. 얼마나 치열했는지, 무슨 성과들이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성장을 이뤄냈는지 모르겠지만, 사소하기 그지없는 오늘도 감사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내일도 아름다운 생이 기다리고 있다.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할.





Manuel Alegre


 "Seja o crepúsculo uma hora de gratidão Por tudo o que nos foi dado, Por tudo o que nos foi negado, Por tudo o que nos foi roubado."

"저녁은 감사의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 우리를 부정한 모든 것, 우리가 빼앗긴 모든 것에 대해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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