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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삭 Sep 06. 2023

포르투갈 리스본 에그타르트

여행 X 음식 :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따뜻한 위로



리스본에서 처음 에그타르트를 맛보았을 때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호들갑을 떨자면 가슴이 철렁하게 맛있었다. 바삭하게 한 입 물자 계란, 버터, 시나몬 향기가 입 안을 채우고, 커스터드가 위장으로 뜨겁게 흘러든다. 걸음을 멈추고 손에 들린 에그타르트를 다시 한번 쳐다보면서 경탄한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었구나. 이제 웬만큼 유명한 맛집이나 디저트집은 다 섭렵해 봤다며 내심 ‘뭐 얼마나 맛있으려고'하는 시건방을 떨고 있었으나,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고 나서 한없이 겸허해졌다.


에그타르트는 쓸모가 없어 버려지던 계란 노른자들 덕분에 탄생했다. 1800년대 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녀원에서는 수녀복 깃을 세우기 위해 다림질용 풀로 계란 흰자를 사용했다. 남은 노른자가 처치 곤란해졌는데, 수녀들이 고민하다 에그타르트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맛이 제법 괜찮았는지 수녀원 밖으로 퍼져나가며 인기를 모았고, 지금은 포르투갈의 명물이 되었다. 극적인 반전이다.


 에그타르트의 탄생비화는 제법 달콤한 위로가 된다.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따뜻하게 입안을 채우는 풍미만큼 마음의 위로를 받는 건 이런 탄생배경 덕분인 듯하다. 타인에게  ‘이런 쓸모없는 인간 같으니!’ 하는 거친 말을 듣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크고 작은 실망에 스스로를 ‘살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가혹하게 몰아세울 때가 있다. 그렇게 안팎으로 상처가 쌓여갈 때 에그타르트의 탄생비화는 제법 달콤한 위로가 된다.


찌꺼기에 불과한 노른자가 다림질이라는 협소한 기능적 행위 밖에서 다시 탐구되고, 음미되면서 세상 맛있는 에그타르트에 꼭 필요한 재료로 거듭났다. 대상을 도구로써 대하는 이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기능적 가치가 그 존재의 실존적 가치를 넘어설 수 없다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다. 스스로가 한없이 쓸모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 쓸모를 누가 어떤 맥락에서 정의해 왔는지, 과연 그게 나의 존엄을 평가할 정도로 좋은 기준이었는지.


우리는 음식을 통해 육신의 허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를 채운다


가벼운 마음으로 먹는 디저트에 생각이 과하다고도 한 마디 들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누구나 자신에게 특별한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음식'이 단순히 우리의 신체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음식을 통해 육신의 허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를 채운다는 것이다. 쓸모없이 버려지던 노른자가 에그타르트로 거듭 태어난 이야기 속에서 알이 본디 가지고 있는 생명과 부활의 기운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에그타르트를 베어 물 때 부정당한 삶의 가치를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는 회복의 욕구가 충족되는 느낌이 드는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에그타르트는 종교적 체험이었다. 영혼의 손상을 회복하고, 삶의 존엄성을 생각해 보고, 고난을 딛고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고자 하는 기운을 얻는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에그타르트를 굽는 수녀들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


‘종교를 떠나서 고단한 삶을 이겨내고 있는 모든 분들께 따뜻하고 달콤한 위로를 건넵니다. 세상은 제법 살 맛 나는 곳이고,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삶에, 당신의 존재에 음미할만한 구석이 많을지 모릅니다. 맛있게 드세요!’





당신의 삶에, 당신의 존재에 음미할만한 구석이 많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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