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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삭 Nov 30. 2023

이탈리아 소렌토, 단단한 햇살을 품은 도시

여행 X 회복: 행복에 대한 결의


소렌토의 햇살은 단단하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트인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지고 도시를 둘러싼 푸른 지중해에 쨍하니 반사된다. 강렬한 햇살이 이 작은 항구도시 위아래로 맞물려 들어가며 강도를 더한다. 항구 쪽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면 나폴리 만이 티레니아 해를 향해 구불구불  끝없이 펼쳐진다. 시선이 닿지 않는 아득한 먼 곳까지 환하게 해가 쏟아진다.


사방에서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걷다 보면 그 강렬한 햇살이 피부를 뚫고 들어와 내면 깊은 곳까지 침투하는 것 같다. 움츠리고 가드를 올려도 소용이 없다. 사정없이 치고 들어와 구석구석을 강타한다. 약간의 음울함도 허락하지 않을 기세다.


소렌토는 '시렌텀(Sirrentum)이라 불렸다. ‘세이렌(Seiren)의 땅’이라는 뜻이다


소렌토는 로마 시대 때 ‘수렌툼(Surrentum)’, 그리스 시대 때는 '시렌텀(Sirrentum)이라 불렸다. ‘세이렌(Seiren)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조 세이렌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나는 선원들 홀려 바다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세이렌의 목소리는 우리 내면에서 은밀히 자기 파괴를 부추기는 목소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설화는 그 내면의 소리가 얼마나 달콤하게 들릴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집스럽게 불운하고 불행했다.


마음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지낸 기간이 길었다. 일터에서 무기력과 우울에 시달렸다. 선택의 어리석음이었는지, 나 스스로의 모자람이었는지, 둘 다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여기서 이렇게 암울한 삶을 살고야 말겠구나 하는 생각을 붙들고 지냈다. 꿈이 꺾였고, 의지가 꺾였다. 온정과 웃음이 있었던 수많은 좋은 날들도 있었지만, 언제 또 다가올지 모르는 실망과 절망에 섣불리 행복해지지 못했다. 나는 벗어날 수 없이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불운하고 불행했다.


 과분하게도 감사한 시간들이 소렌토의 햇살처럼 단단하게 쌓였다.


그런 시간을 뒤로하고, 두어 달이 넘게 유럽여행을 하며 행복이 차고 넘치게 흐르는 황홀한 매일을 보냈다. 영화 배경 같은 곳들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거닐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느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하루들이 이어졌다. 과분하게도 감사한 시간들이 소렌토의 햇살처럼 단단하게 쌓였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아프게 했던 날카로운 생각들도 무장해제를 당하고 일광소독 되어버렸다.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라는 명제에 대해 너무 많은 반례들을 마주했다. 이제 이 여행 끝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일종의 임계치를 넘어서버렸다. 어두운 마음들이 다시 비집고 들어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이렌의 노래가 다시 매혹적으로 들려올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세이렌의 노래가 다시 매혹적으로 들려올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트로이 전쟁 후 귀향하던 오디세우스처럼 돛대에 몸을 묶고 밀랍으로 귀를 틀어막아야겠다. 눈부시게 밝았던 여행의 기억과 용기 있게 행복을 택하기로 한 결심에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삶을 부정하고 깎아내리는 소리들에 귀를 닫아야겠다.


그마저도 지치고 힘들어질 때면 다시 세이렌의 땅으로 돌아와 봐야겠다. 이곳의 햇살을 잔뜩 받으며 다시 기운을 회복하고 마음의 밝음과 따사로움을 다시 채워야겠다. 그러고 나서는 돌아가 또 부서지도록 도전하고, 실패하고, 움츠러들고, 상처받고, 형편없게 구겨져버린 뒤, 다시 돌아와서 또 힘을 찾겠다. 이 과정을 지나 하게 반복하며 더 단단해지겠다.


율리시스와 세이렌 (Ulysses and the Sirens, 1891) by John William Waterhouse




돌아오라 소렌토로 (Torna a Surriento)

By  Ernesto De Curtis


아름다운 저 바다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고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벗이여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고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벗이여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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