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렝탑, 발견기념비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파스테이스 드 벨렝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고, 벨렝탑과 발견기념비는 바다처럼 넓은 태주 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수도원에서 큰 나무들이 늘어선 광장을 가로질러 걸으면 넓은 대로가 나타난다. 강변으로 가려면 이 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횡단보도는 없다.
처음 찾는 여행자라면 당황스럽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향하니 자연스레 따라가다 보면 통로를 찾을 수 있다. 지하 통로나 육교를 이용해 건너야 한다. 멀리서 발견기념비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그 통로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발견기념비를 향해 걸으며 고개를 들어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기 바쁜 순간, 나는 예상치 못한 세계를 발견하고 말았다. 나를 따라다니던 비구름이 만들어준 공간, 일그러진 반영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빗물이 고인 길바닥에 비친 일그러진 하늘을 급하게 뛰어넘으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하늘로 솟아오를 수는 없었지만, 혹시 저 웅덩이가 포털(Portal)이라 저기에 발을 담그면 우주로 워프warp하는 건 아닐까?'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 재미난 이야기들이 떠올라 즐거운 상상을 하며 물웅덩이를 풀쩍 뛰어넘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강의 크기와 모습과는 사뭇 다른 테주강은 대항해시대를 열어간 시작점이다. 테주(포르투갈어 Tejo) 강은 구글맵에서 타구스(라틴어 Tagus) 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스페인 내륙에서 시작해 리스본에서 대서양과 만난다. 강 하구는 너비가 15km에 달해 바다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 이유로 리스본에서 보는 거의 대부분은 바다가 아닌 테주강이다.
1960년 ‘항해왕자’ 엔히크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발견기념비는 거대한 범선 모양을 하고 있다. 맨 앞에는 엔히크 왕자가 서 있고, 그 뒤로 양쪽에 왕, 항해사, 선교사, 지도 제작자, 작가 등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를 이끈 33명의 인물 조각상이 줄지어 서 있다.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시인 카몽이스...... 역사책에서 봤던 이름들이 그곳에 있다.
대항해시대(포르투갈어: Era dos Grandes Navegações, 영어: Age of Discovery, Age of Exploration)라는 명칭은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 시기 식민지 개척이 이루어졌기에, 식민지가 된 나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거창한 이름이 거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 한 근본적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 필요 때문이었다. 15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이 동방 무역로를 장악하면서 유럽의 향신료 수입 길이 막혔다. 당시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는 음식 보존과 조리에 필수적이었고, 무게당 가격이 금에 버금갈 정도로 귀했다. 포르투갈은 이슬람 세력을 우회해 인도로 가는 새로운 바닷길을 찾아야 했고, 그것이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항해의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로 인해 순수한 탐험심까지 폄하된다면 마음이 아프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작된 신항로 개척이지만, 거기에는 분명 순수한 탐험과 모험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 정신이 없었다면 누가 감히 ‘세계의 끝’이라 여겨지던 바다로 나아갔을까. 폭풍과 괴혈병, 굶주림과 죽음을 무릅쓰고 험난한 개척의 길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탐험 본능 덕분이 아니었을까.
태주 강변에 서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나는 500년 전 이곳에서 출항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항해를 시작하던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두려움과 설렘, 욕망과 용기가 뒤섞인 그 복잡한 감정들을 가지고 떠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