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경계를 흐르는 시간

by 레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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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 무언가를 파악하기 위해선 자세히 보는 것도, 전체를 보는 것도 필요하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안에서 느끼는 리스본과 발견기념비 위에서 느끼는 리스본의 감각들을 어떻게 하나로 연결할 수 있을까. 상상과는 달리 그다지 대단할 것 없어 보이는 도시 리스본 위를 지나가는 층층이 쌓인 구름만큼이나 나의 높은 호기심을 채워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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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탑 쪽으로 이동하는 길에 발견한 젤라떼리아. 여행지에서는 '먹을까, 말까' 결정해야 한다면 먹어야 한다. 젤라또는 리조 맛을 좋아하지만, 이탈리아 젤라떼리아에도 잘 없는 게 여기에 있을 리가. 어디서 들었더라? 젤라또는 콘을 들 힘이 있다면 콘에 먹어야 한댔다. 그렇게 나는 그날의 젤라또를 콘에 담아 들었다.





벨렝탑은 현재 공사 중이라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16세기에 강어귀를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이 요새는 조수 차이로 물이 차는 감옥으로도 사용된 곳이었다. 밖에서라도 그 부분을 보고 싶어 가림막 사이로 옛 영광의 흔적을 더듬었다.


유럽답게 근처에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과 구경하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음악은 여행지에서 들은 걸 후에 일상에서 듣다 보면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힘이 있다. 좋아하는 음악은 마음에 드는 여행지에서도 꼭 들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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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두워지는 하늘


다음 목적지인 식당으로 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갑자기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1월의 포르투갈 날씨는 변덕 그 자체다. 버스를 타고 벨렝 지구에 저장해둔 로컬 맛집으로 가는 중 비가 그치더니 다시 해가 난다. 이 정도의 불안정함은 리스본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IMG_1191.jpg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날씨



오후 2시 반 정도에 도착했는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3시 반부터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동네 어르신들로 보였다. 진정한 맛집이 맞나 보다며 잠시 기다렸다. 20분 정도 대기한 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메뉴를 봐도 어떤 음식인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구글맵에 나와있는 사진을 보면서 주문했다.


치킨, 새우, 샐러드.. 먹어보고 싶은 게 많아서 주문하는데 양이 너무 많다고 말렸다.

"치킨은 반 마리만 해도 충분해. 내 말을 믿어."

그랬다. 양이 정말 푸짐하고 맛있었다. 심지어 가격도 괜찮았다. 진정한 동네 맛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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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가려고 했던 곳은 아주다 궁전 박물관. 입구를 찾다가 들어간 곳은 왕실 보물 박물관이었다. 왕실의 보물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가방은 맞은편 코인락커에 넣어야 했고, 보안검사까지 한 후에 입장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동안 현금이 필요한 때가 딱 두 번 있었는데 이때가 그 한 번이다. 리스보아 카드로 입장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라고만 남겨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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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출구는 카페테리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일몰을 보기위해 생각해두었던 전망대까지 간다면 가는 도중에 해가 질 것 같아서 여기서 즐기기로 했다. 이곳 왕실 박물관의 카페테리아에서도 창 너머 대서양으로 나아가는 풍경이 보인다. 그만큼이나 포르투갈의 영혼 깊은 곳에 정복자의 심장이 꿈틀대기 때문인 건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건축에는 높이보다 먼 곳을 향한 기대가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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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포르투갈의 MZ들의 집결지가 있는 듯 삼삼오오 모여서 버스를 기다린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하루는 나보다 길었을 것이다. 그렇다. 시간이란 개념은 무한하다. 어떤 이에게 하루는 의미 없는 시간일 수 있지만, 다른 어떤 이에게 하루는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하루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시간들, 그 세월들은 나에게 새로운 시간의 탄생을 강요하고 있다.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의 시간을 뒤로하고, 나이라는 시간의 고정관념 안에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한계를 뚫고, 누구에게서도 정의 받지 않는 마음의 날개를 달고 새로이 태어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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