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 카페 가라젬

by 레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각자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나의 몫은 일정의 큰 틀과 숙소, 도시 간 이동이었다. 출발 전에 대부분의 준비가 끝나는 일이라 여행지에서는 오히려 가벼워진다. 세부적인 계획은 전날 밤이나 아침에 그때그때 생각하는 편이다. ‘꼭 가보고 싶은 곳’ 몇 군데만 마음에 두고, 나머지는 발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동행한 친구는 한정된 시간 안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지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가야 할 곳과 먹어야 할 것들의 대부분은 그 친구의 목록에서 나왔다. 또 다른 한 명은 이미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굳이 자신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고 했다. 무엇이든 처음이라 다 좋다며, 대신 우리의 아침을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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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의 여행은 처음이었다.

혼자였다면 결코 가지도, 보지도, 먹지도 못했을 것들을 경험한 여행. 돌이켜보면 혼자가 편했던 지난 여행들은 자유 때문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까탈스러움을 기꺼이 받아줄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한 방식이었을지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조금씩 변해간다. 어떤 이는 유해지고, 어떤 이는 더 날이 선다. 친구가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젠 몇 명이면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그런 걸 다 받아줘야 해? 너무 피곤해. 그냥 안 보고 말지."

받아주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억지로 붙들지 않게 된 대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과는 조금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어졌다. 나는 더 유해졌을까, 아니면 더 고집스러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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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의 셋째 날 아침, 드디어 숙소 근처 탐험을 시작했다.

숙소 위쪽으로 2분여 정도 올라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나타났다. 세뇨라 두 몬테 Senhora do Monte 전망대였다. 우리가 묵던 곳이 단순히 전망이 좋은 숙소가 아니라, 전망대가 생길 만큼의 풍경을 품은 위치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친구들의 칭찬에 잠시 어깨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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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전망대의 난간에도 어김없이 자물쇠들이 걸려있었다. 한때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시작된 이 낭만적인 풍경이 이제는 부담으로 남아 있다. 무게로 인해 난간이 손상되고, 버려진 열쇠가 환경 문제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정말 자물쇠로 잠가야 영원할까. 열쇠를 던지는 행위가 마음을 대신할 수 있을까. 보이는 자물쇠보다 존중과 배려라는 보이지 않는 잠금이 더 오래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자물쇠 대신 이 풍경을 기억하겠다는 마음의 자물쇠를 걸고 난간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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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선은 아래쪽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바라보던 오렌지색 지붕들과 테주강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 풍경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는 날이었다. 아래쪽으로 펼쳐진 길을 따라 경치가 좋다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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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의 공원을 지나며 잠시 불안함을 느꼈고, 우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리스본은 안전한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여행자의 감각은 언제나 사소한 틈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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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마 지구의 골목은 좁고 오래되었다. 차 한 대가 멈추면 뒤에 줄줄이 차량이 이어지지만, 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사람을 태우고, 기다리고, 다시 움직인다. 그 풍경 앞에서 조급해진 쪽은 우리였다. 이 도시의 속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여행자의 모습이 잠시 부끄러워졌다.


언덕 위에 지어진 건물들은 길에서는 입구지만, 안에서는 층수가 달라진다. 카페를 찾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가 두 층을 내려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여긴 언덕의 도시였지.'



자리에 앉아 풍경을 내려다보며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전망은 우리 숙소가 더 좋은데!”


유명한 전망보다 익숙해진 풍경이 더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여행은 최고의 장소를 찾아내는 경쟁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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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좋은 곳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면 더 좋았겠지만, 리스본에서는 커피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기로 했다. 이 도시는 커피의 맛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는 곳이었다. 경적 대신 기다림을 선택하는 여유, 이방인에게 건네는 친절,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시간.


완벽한 전망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여행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속도가 아닌 방향, 완벽함이 아닌 지금을 누리는 것.

그것이 이 도시가 나에게 가르쳐준 여행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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