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근교 투어
볼트 운전사는 전날 우리가 30분 넘게 헐떡이며 올랐던 언덕을 5분 만에 내려갔다.
약속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투어 집결지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몇몇 얼굴이 낯익었다. 15시간 비행 동안 화장실 가는 길목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입국심사 줄에서 앞뒤로 섰던 사람들.
포르투갈을 자유여행하는 사람들의 동선은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 같은 비행기, 같은 투어, 같은 레스토랑. 자유여행이라 부르지만, 어쩌면 모두 보이지 않는 레일 위를 달리고 있던 건 아닐까.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기 보이는 수도교는 대지진 7년 전에 지어졌습니다. 재난 속에서도 살아남아 200년 넘게 제 역할을 해왔죠."
나는 고개를 들어 수도교를 봤다.
바로 콜럼버스 이야기가 이어졌다. 포르투갈에서 후원을 받지 못해 스페인으로 갔고, 그래서 신대륙 발견의 영광은 스페인 것이 되었다는. 희망봉이라는 이름은 인도로 갈 희망이 보여서 붙여진 거라는. 엔히크 왕자, 바스쿠 다 가마, 대항해시대.
정보가 쏟아졌다. 투어의 장점이다.
투어를 리스본의 마지막 날에 잡은 게 아쉬웠다. 보통은 도착 다음날 투어를 한다. 그래야 가이드가 알려주는 정보들을 며칠 동안의 여행에 활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일정이 맞지 않아 마지막 날에 넣었다.
그래서 알게 됐다. 리베르다드 거리가 '리스본의 샹젤리제'라 불린다는 것, 주말엔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것. 우리 숙소가 있던 알파마 지구는 무어인들이 살던 곳으로 목욕탕이 많아서 '알함마'에서 유래했다는 것.
사흘 동안 나는 그 거리들을 아무것도 모르고 걸었다. 그냥 좁다고, 가파르다고, 타일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알고 걸었다면 나는 '리스본의 샹젤리제' 본 것이다. 모르고 걸었기에 '내가 느낀 리스본'을 봤다. 알함마의 유래를 알았다면, 거리의 역사를 떠올리며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고 헤맸기에 그 좁은 길은 당혹스러움과 재미로 채워졌다.
떠나기 전날 듣는 해설은 쓸모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맞을 순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을 듣고 확인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고 나서야 이름을 붙이는 것.
알고 보는 것과 보고 나서 아는 것의 차이는 대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전자가 리스본을 배우는 것이라면 후자는 리스본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두 종류로 나눈 다면 직접 부딪히며 얻는 것과, 누군가 떠먹여 주는 것이다. 나는 이날 하루 종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가장 편한 여행은 가장 쉽게 잊히는 여행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투어의 장점은 아무것도 모르고 와도 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설명과 지식이 아닌 조용히 내가 느끼고 받아들인 그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