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렸을 때 화창한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빗물을 머금은 돌바닥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고, 너무나 기분 좋은 그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류장에서 수도원 쪽을 보니 아직 오픈 전이라 줄을 선 사람들이 서 있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방문객이 많기로 유명하다. 티켓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입장하고, 그 다음이 리스보아 카드로 입장하는 줄이다. 중간에 티켓을 가진 새로운 방문객이 오면 그들을 먼저 들여보냈다. 특히 하루에 리스보아 카드로 입장할 수 있는 수가 정해져 있어서, 오전에 사람이 많으면 오후에는 입장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11월은 비수기라 그런지, 아침 9시 30분 조금 전에 도착해서 30분 정도만 기다린 후 입장할 수 있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전성기였던 시절에 발전했던 마누엘 양식*의 결정체가 이 수도원이다. 바스쿠 다 가마의 첫 항해가 출발한 지점 근처에 세워졌으며, 본래 항해자들의 위한 성당이 있던 곳이었다. 마누엘 1세가 건립을 명했고, 포르투갈 인도 무적함대의 이익에 대한 세금으로 건설 자금을 조달했다고 한다.
이곳이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기도와 항해자 지원을 수행하는 장소라는 이야기를 알게 된 순간, 게임 《대항해시대2》의 장면이 떠올랐다. 게임에서 조안 페로 같은 주인공들이 바다로 나가 해적이나 폭풍을 만나지 않으려면 운이 좋아야 했고, 그 운을 높이기 위해 성당에 가서 기부를 해야 했다. 게임 속의 가상의 이야기와 현실속 항해자의 역사가 이 수도원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종교와 항해, 그리고 인간의 바람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였던 것이다.
수도원 안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았다. 구름을 가르며 직선으로 나아가는 그 궤적을 보면서 생각했다. 대항해 시대에는 이런 광경이 없었을 것이다. 그 시절 수도사들이 수도원의 뜰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오직 구름만 있었다. 명상하며 깊이 있는 기도와 고행을 이어가던 시대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 시대에도 비행기가 있었다면? 아마도 수도자의 영혼은 깊어지기보다 흔들렸을 것이다. 구름이 바람을 따라 천천히 변하는 것을 보는 것과 인간이 만든 기계가 하늘을 갈라 날아가는 것을 보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마음의 깊이와 생각의 길이를 늘이게 하여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무한함을 마주하게 한다. 후자는 다르다. 그것을 보면 인간의 한계 너머로 뛰어나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작음을 벗어나려는 열망,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려는 도전이 가슴을 채운다. 기도보다 꿈이 더 크게 울리고, 고행은 초라해 보인다.
내가 지금 보는 이 비행기는 어느 쪽일까?
내가 이 여행을 하며 만나는 것들은 나를 더 깊게 만드는가, 아니면 더 멀리 가고 싶게 만드는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마누엘 양식
포르투갈의 전성기였던 마누엘 1세 시대(15세기 말~16세기 초)에 발전한 이 양식은 밧줄, 닻, 산호, 해초 같은 해양 모티브와 르네상스 및 무어 양식의 영향을 혼합한 것이 특징이다.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과 장식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인들의 바다에 대한 꿈과 정열이 어떻게 돌과 나무에 새겨졌는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에필로그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리스보아카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픈 전에 줄을 서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 서둘러 갔건만, 이미 수십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다른 방향에도 줄이 있었다.
대기 중인 직원에게 물어보려고 다가가 "Excuse me."라고 건넸는데 반응이 없었다. 조금 더 크게 불렀다.
직원이 "Moment!"라며 소리쳤고,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아, 타이밍이 정말 안 맞네.' 그렇지만 기분은 확실히 상했다. 미리 와서 줄을 파악했더라면 이런 무안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 리스보아카드 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 옮길 수 있었지만, 마음속엔 작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것이 포르투갈에서 느낀 유일한 불친절이었다. 불친절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순간이었지만, 그 후로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따뜻함에만 자꾸 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