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테이스 드 벨렝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시대인 지금, 벨렝 지구에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나 벨렝탑만큼 주목받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이 아닐까. 이 가게가 없었다면,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줄도 훨씬 더 짧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역사는 우연과 필연이 만나는 지점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는 수도복에 풀을 먹이는 작업에 달걀 흰자를 대량으로 사용했고, 자연스럽게 노른자가 늘 남아돌았다. 남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수도사들은 노른자를 버리지 않고, 설탕과 우유를 더해 커스터드 타르트를 만들었다, 파스텔 드 나타는 그렇게 탄생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설탕이다. 당시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설탕은 귀중한 사치품이었지만, 포르투갈은 달랐다. 대항해시대의 영광 속에서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세운 식민지에서 대규모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설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국내에도 설탕이 풍족했다.
게임 《대항해시대2》에서 항해자들이 빠르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향신료를 구하기위해 항해를 계속 해 나가듯, 현실의 포르투갈도 브라질의 설탕 무역을 장악함으로써 유럽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누렸다. 포르투갈의 해양 무역의 영광이 가져온 설탕의 풍요로움이 이 작은 과자를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남은 달걀노른자와 풍부한 설탕이 만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디저트가 탄생했다.
시간이 흘러 수도원이 문을 닫게 되고, 떠나는 수도사들에게 이 비밀 레시피를 얻어 1837년에 문을 연 가게가 바로 오늘날의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다. 원래 과자의 이름은 파스텔 드 나타지만, 벨렝 지구의 이 가게에서 만든 것을 특별히 파스테이스 드 벨렝이라 부르며 구분한다. 그 레시피는 지금도 극소수만이 아는 비밀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입구부터 사람들로 가득한 파스테이스 드 벨렝은 이 시대의 핫플레이스다. 실내에서 먹고 가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타를 사들고나와 길거리나 공원 벤치에서 먹는다. 줄서는 시간이 짧아 빠르게 나타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비수기의 좋은 점이 있다면, 성수기에 긴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곳을 단지 몇 분만 기다려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줄을 서서 사진 몇 장 찍는 새 자리가 났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나타가 최고라고 말한다. 다시 올 기회가 쉽지 않은 곳이라며 3개씩은 먹고 가자고 에스프레소와 함께 주문했다.
나의 꿈의 나라인 포르투갈의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커피다.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나타와 함께 먹기에는 괜찮았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일행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양 많은 에스프레소 같았다. 그냥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시라.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3개씩 먹고도 못내 마음이 아쉬워서 각자 2개씩 더 포장했다. 들어갈 때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는데, 다 먹고 나오니 다시 해가 쨍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날 포르투갈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대항해시대의 긴 세월이 게임에서는 고작 몇 분 안에 흐르듯이, 이곳에서는 사계절을 하루 사이에 체험할 수 있었다. 아침의 화창함, 중간의 소나기, 그리고 또 다시 나타나는 햇살.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속에서 외투를 입었다 벗었다하며 게임 속이 아닌 현실의 거리를 걸었다. 몇 세기를 거쳐 전해진 비밀의 맛을 먹었고, 그렇게 또 다른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나타 감상문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나타(Pastel de nata)는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부드러운 커스터드가 대조를 이룬다. 흘러내릴 듯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은 다른 곳의 나타들보다 단맛이 적당했고, 촉감이 좋았다.
하루가 지나 다시 먹으니 크림이 페이스트리에 스며들면서 바삭함이 줄어들었다. 대신 쫀득한 질감이 생겼다. 같은 과자지만 다른 맛이 되어 있었다.
신선할 때의 명확한 맛과 시간이 지난 후의 부드러운 맛. 두 가지 모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