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등뒤에도 뱃속에도 아기가 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우리부부가 아이맞을 준비로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운 집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10평대 빌라에서 아기를 키우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일단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아기용품을 둘 곳이 없었다.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쾌적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마음 5그램 추가.
결혼 1년 남짓 동안 모은 돈에 전세대출금에 더해봐도 종자돈은 여전히 귀여운 액수였다. 아파트는 비쌌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나?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우리 부부는 아파트같은 오피스텔을 발견했다. 분명 오피스텔인데 방이 3개고 화장실도 2개였다. 한 층에 2개 호만 있는 계단식, 이건 아파트가 아닌가? 이와 비슷한 구성의 오피스텔 건물이 이 동네에 밀집되어 있었다. 우리는 여기다 싶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부동산 문 여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부동산 유리벽에 붙어있는 매매, 전세 전단지를 쭈뼛쭈뼛 보다가 용기내어 부동산 문을 열었다. 딸랑. 내 방문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다시 돌아 나가고 싶었는데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거 보러 오셨어요?”
돌아보니 두상이 예쁜 숏컷의 여자분이었다.
“아... 저... 저기 밖에 붙어있는거요. 전세, 저 가격인가요?”
“몇 평 보세요?”
부동산 사장님은 쭈뼛거리는 나에게 예산과 원하는 평형을 물었다.
'왜 내 종자돈을 물어보지?'
귀여운 액수를 떠올리곤 다시 의기소침해졌다. 당장이라도 집을 보러 가자고 할 것 같아서 주말에 남편과 다시 오겠노라 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혼자서 부동산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왠지 모르게 높은 벽 하나를 깬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만 보던 부동산에 스스로 들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본 나 자신이 기특했다. 어른력이 +1 상승한 것 같았다. 나중에 숏컷 사장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배부른 임산부가 혼자서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워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고 했다. 이 인연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사장님과 나는 가끔 안부를 묻고 지낸다.
주말에 남편을 대동하고 한층 더 위풍당당하게 부동산을 찾았다. 우리는 몇몇 집을 구경했다. 방3개, 화장실 2개의 아파트 컨디션의 30평대 오피스텔. 그 중 밝은 톤에 햇볕이 잘 드는 집 하나가 마음에 꼭 들었다. 집주인이 살고 있어서 깨끗하기도 했고, 한 층에 앞집과 우리집만 있는 계단식이고, 조용한 동네였다. 우리는 이 집을 우리의 두 번째 집으로 결정했다.
좁디좁은 신혼집에 살다오니 처음엔 방 2개가 텅텅 비었다. 하지만 금세 방 하나는 거의 아기전용 창고방이 되었다. 존재감 가득한 아기라는 생명체. 남편은 분리수거를 아무 때나 할 수 있고, 지하 주차장이 연결되어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아침이면 쏟아지는 햇볕 덕분인지 아기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아기는 다리가 길고 어깨가 장군감이고 먹성이 좋은 아기였다. 아기띠를 하고 외출하면 엘리베이터에서 어르신들이 튼실한 장군감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이 익숙한 스토리를 내가 듣게 될줄이야. 덧붙여 체구 작은 엄마가 힘들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겐 너무 벅찬 그녀, 오 마이 베이비.
집터가 너무나 좋았던 걸까? 아기가 백일이 될 무렵 뱃속에 둘째가 찾아왔다. 갓 임산부를 졸업한 초보 엄마로서 육아의 세계에 발을 딛자마자 임산부월드에 재입학 한 것이다. 하지만 초보엄마 영역은 임산부월드보다 훨씬 막강했다. 첫 아이를 키우느라 뱃속에 아기는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기를 키우기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피스텔은 주변환경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아기와 나는 갑갑해서 하루에 두 번씩 산책을 했는데 오피스텔 주변은 인도가 좁고, 장애물이 많아 유모차 끌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로 아기띠를 했는데 배가 점점 볼록해지며 둘째가 점점 존재감을 드러냈다. 육아와 집안일이 점점 힘들어졌지만 우리는 산책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해가 어둑해질 무렵 배부른 임산부는 아기를 뒤로 업고 좁은 보도블럭을 걸어 지하철 역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아기아빠가 보인다. 행복한 세식구, 아니 네식구는 손을 잡고 우리의 보금자리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