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서울역까지
나는 밭 매기 싫어서 도망쳤어.
시골에서 엄마랑 고구마 밭 매면서 먹고 살던 때였는데, 엄마가 "자러 간다"길래 "그래 가" 하고 그냥 나온 거야. 뭐가 그렇게 싫었는진 모르겠는데, 어린 마음에도 더는 못 살겠더라고.
그때 내 나이 겨우 열 살. 서울역으로 갔어. 거긴 진짜 난장판이었지. 사람들이 바닥에 뭐 깔고 자고, 덮고 자고… 근데 나는 아무것도 없었어. 이불도 없고, 깔개도 없고, 그냥 바닥에서 떨면서 잤지. 너무 추워서 수없이 벌벌 떨었어. 배고파도 돈이 없으니까 먹을 수가 없었지. 가끔 밥차가 오면, 배고픈 애들이 몰려들었어. 나도 뛰어가서 앞에서 퍼주는 밥을 손으로 집어먹었지. 그걸 본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배고파 죽겠다”고 말했더니, 나한테 먼저 밥을 퍼줬어. 밥그릇에 가득. 그거 다 먹고 나니까 배가 좀 가셨지. 아, 진짜 고마웠어.
그날 밤, 경찰이 오더니 왜 나만 이불이 없냐고 묻더라.
“없어요.”
라고 했더니, 나를 따라오래. 파출소 같은 데였어. 남자 경찰이 날 방에 데려다줬고, 그 방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었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몰라.
며칠 뒤, 어떤 아줌마가 나타나 “나 따라오면 밥도 주고 옷도 준다.”고 하길래 따라갔지. 거긴 애들도 많고, 노인들도 있었어. 나는 거기서 반장도 했어. 애들 돌봐주고, 이불도 깔아주고. 꽤 오래 있었던 것 같아.
어느 날, 누가 “집이 어디냐”고 묻길래 “목포”라고 했지.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이 누굴 불렀는데, 알고 보니 우리 언니 친구였어. 언니한테 연락하겠다고 했고, 며칠 뒤 언니가 날 데리러 왔어. 언니 집에서 살게 됐지.
언니한테는 “엄마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 언니도 그러겠다고 했지. 다시 끌려가기 싫었거든. 그렇게 언니랑 살면서 나이 들어갔고, 오래 붙어 있을 수는 없어서 결국 남자 따라 나갔어.
처음 만난 그 자식은 술만 마시면 때렸어. 그냥 막 때려. 얼굴이고 등이고, 반죽 하듯이, 지그시 밟듯이. 그렇게 맞다가 결국은 못 참고 도망 나왔어. 그리고 나와서 젊었을 땐 돈도 벌었어. 유흥업소 일 했지. 손님도 많았고, 돈도 잘 벌었어. 근데 나이 드니까 손님이 뚝 끊기더라. 그 일 접고 살다 보니 돈도 떨어지고, 살 곳도 없어졌어.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이번엔 좀 달랐어. “나쁜 데 안 데려간다, 술도 안 마신다.”고 하더라고. 따라가 봤더니 진짜였어. 남대문 근처였고, 조용하고 나쁘지 않았어. 그 사람이 바로 지금 같이 사는 아저씨야. 그 사람하고는 지금까지 같이 살았어. 욕도 안 하고, 잘해줬어. 처음으로 마음 놓고 지낸 사람이지.
여기 살면서 별일 다 겪었어. 좋은 기억은 별로 없고, 돈 뜯기고, 병 얻고, 정신과 약까지 먹었어. 사람들도 내 말 무시하고, 둘러대고, 괄시했지. 그래도, 그런 속에서도 나 혼자 400만 원을 모았어. 농협에 묶어놨고, 수급비 받을 때는 따로 또 10만 원씩 넣었어. 다 합치면 500만 원이 넘지.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만든 돈이라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요즘은 핸드폰도 좋은 거 하나 샀어. 나도 사람인데 좋은 거 좀 쓰고 싶었어. 그것 때문에 말다툼도 좀 있었지만, 후회는 안 해.
이제 아파트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솔직히 기분이 복잡해. 우리 아저씨랑 같이 들어가고 싶은데, 합의가 안 된대. 나는 그냥 큰 방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어. 기대는 안 해. 그저 따뜻한 데서, 선생님들한테 민폐 안 끼치고, 조용히 살면 돼.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나도 잘 살고 싶어. 선생님들한테 애 안 먹이고, 내 돈 내가 챙기고, 누구한테도 눈칫밥 안 먹고… 그냥 그렇게, 내 몫 지키면서 살고 싶어. 지금껏 고생한 만큼,
이제는 조금은 편하게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