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의 조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사춘기 나이가 되어있었다. 누구보다 세련되고 자기 앞가림에 철저하던 내 친구는 어느새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있었는데, 아이가 엄마 말을 듣지 않아 힘들어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친구의 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눈 맞춤을 하지 못했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였고, 사회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규칙을 반복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도의 자폐 아이 모습은 아니었지만, 흔히 생각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일반적인 모습도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 검사를 받아본 적 있는지 물었다. 내 친구는 눈물을 쏟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본인도 어딘가 다르다 생각했지만,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해왔고, 분명 노력의 결과 아이가 좋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알겠지만, 그렇다고 계속 부정하고 아이에게 맞는 방법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돕지 않는 것도 아이를 위한 건 아니었다.
나는 내 친구를 설득했다. 네가 없어도 세상을 살 수 있게, 세상의 규칙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대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경망이 조금 다르게 형성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못하다고. 네가 언제까지 1:1로 아이 케어를 담당할 순 없다고. 특수교육을 받아야 할지 알아보자고.
친구는 오열했다. 자기도 알고 있었다고. 그래도 받아들이기 싫었다고. 노력하면 평범한 아이들과 같아 질 것이라고 믿고 싶어서 계속 참고 참았다고. 나도 사람좋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내 친구를 껴안고 같이 울었다. 누구도 내 친구처럼 좋은 엄마가 되긴 힘들거라고 너니까 이정도로 견딘거라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고, 하며 우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르쳤던 아이와 너무도 닮은 친구의 아이에게 몇 가지의 규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시각이 엄청나게 발달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탭 볼을 해볼 것을 권유했다. 이렇게 반응속도가 빠른 아이는 손과 눈의 협응 능력을 길러주면 분명 좋아질 것 같았다.
아이는 시각화해서 설명을 해주고, 조금은 천천히 자신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내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 규칙 몇 개를 내면화하고 나니 떼 부리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의 아이가 너무 기특했다. 이제 내가 하던 일을 친구가 해야 할 타이밍이 되었다.
오랜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갈 때가 되었다. 친언니가 내 짐을 픽업해주러 친구네로 왔다. 짐을 싸면서 나를 지금까지 내가 하던 일을 쭉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 밖에서 내 친구가 화난 얼굴로 날 노려보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내가 자신의 아이를 폭력적이라 했다고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건 오해라고 했다.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미 세상이 준 다양한 시선들과 숙덕거림에 상처 입은 내 친구는 너도 똑같은 사람이라며 나를 밀어냈다. 내가 좋아서 내 친구를 돕겠다 나선 것이고, 내 친구의 날 선 말은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누군가 일상의 종이로 마음을 조금씩 베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를 이해했다.
친구에게 알았다고. 나는 네가 아니기에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너는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의 동정의 말로 이해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내 진심은 조금 다른 신경망 회로를 가진 00 이는 알지도 모른다고. 나는 네가 오래 건강하게 아이와 일상을 누리길 바라고, 세상이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정해지길 바랄 거라고. 언제든 나한테 전화하라고.
말을 하면서 차에 올랐다.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꿈이었다.
너무나 생생한 꿈, 내가 내 친구를 부둥켜안고 울던 친구 어깨의 들썩임이 아직도 내 손에 감각으로 남아있는 것 같은데. 꿈이었다.
꿈이라 다행이구나
내가 특수교육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굴 교육한다는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하며, 휴~ 다행. 큰일날 뻔했네, 하면서도
자신이 원해서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 누군가에게는 내 꿈속의 일들이 현실 아니던가
하며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글을 쓴다
세상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조건을 갖고 태어나고
그 조건으로 인해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간으로 환대받는 건, 내가 세상이 인정하는 '정상'의 조건에 해당되기 때문이며, 그 조건에 맞지 않았을 때 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세상의 냉정함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는
인류는 그래도 다정한 누군가의 숨겨진 손길들이
존재했기에 여태까지 살아남았음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의 삶을 100%이해하고 살수 없고
다른 누구도 날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의 태도만이라도 조금은 낯선 누군가에게 다정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