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궤도 이탈
대학 입학과 함께 PEET(Pharmacy Education Eligibility Test, 약학대학전문자격시험) 제도를 알게 되었다. 학부를 다니며 PEET 시험을 통과해서 약대를 갈 수 있다고 한다.
"괜찮아. 천천히 준비하면 돼."
엄마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결국엔 될 거라고.
대학 생활은 빠르게 지나갔다.
친구들은 연애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즐기고, 미래를 고민했다.
그동안 나는 PEET 준비에 집중했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다른 것들은 모두 나중으로 미뤄졌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수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험은 연달아 떨어졌다.
친구들은 하나 둘 취직했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SNS에는 행복한 일상들이 올라왔다.
나는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 될 거야."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엄마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과정을 나는 고스란히 느꼈다.
20대 중반이 넘어가자 불안이 엄습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EET는 계속 떨어지고, 나이는 계속 먹어가는데,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석사라도 해야겠다."
수험 과목 대부분이 과학이었고, 대학교에서 이수한 과목들을 살려서 석사 학위를 딸 수 있다.
PEET 준비를 더 깊이 하고, 석사 학위도 준비하니 추후 취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본교 대학원 자리에 연락을 해봤으나, 내가 다니던 학부가 통합되면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타 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타 학교에서 온 학생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같은 질문을 해도 대답의 온도가 달랐고, 같은 실수를 해도 반응이 달랐다. 그것이 의도적인 차별인지 자연스러운 내부자-외부자 구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 자체였다.
실험실 동기들은 모두 같은 학부 출신으로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과 친숙한 사이였다. 나는 늘 한 발짝 뒤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학비를 지원받기 위해 실험 수업 조교를 했다. 내 실험도 해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하고, 교수님 수업 준비도 해야 했다. 실험 장비 사용 스케줄에 밀려 내 실험은 항상 밤늦게 시작되었다.
새벽 3시에 끝나는 날이 많았다.
학교 후문에 위치한 반지하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막내 삼촌의 도움으로 계약한 작은 방.
고시원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1년 계약으로 졸업할 때까지만.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디스크였다. 무리한 실험 스케줄과 졸업 논문 준비가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래도 버텼다. 논문을 완성했고, 높은 학점으로 졸업했다.
동기들보다 더 높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기업 연계 취업 기회는 다른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실험실에 남아서 연구원으로 일하지 않겠니?"
그 제안은 더 이상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거절했다.
원룸 계약이 끝나는 날, 나는 짐을 싸서 본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