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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음악,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

중년에 다시 쓰는 일기 (5)

by 다시

커피를 끊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오전에 한두 잔을 더 마신 뒤 점심을 먹고 나서 한 잔, 오후에 또 두어 잔을 마십니다. 야근까지 하는 날이면 그 양은 더 늘어나죠.


너무 많이 마시나 싶어 투 샷을 원 샷으로 줄이거나 디카페인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카페인 중독이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일상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커피를 즐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년이 되면서 내가 꽤 많은 것들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혼자살 수 없는 세상이니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데, 의지를 넘어 의존이 되고 의존하는 대상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 때 상처를 입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보다 젊을 때는 타인의 인정 따위는 필요 없다고 외치던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내 결과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져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업을 다시 했고, 다른 사람들이 내 결과물을 지적해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되면 타인의 지적에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년이 되고 보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면서 내가 아닌 외부의 많은 것들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커피였습니다.


커피를 마셔야 머리가 맑아지고, 커피를 마셔야 스트레스가 좀 내려가고, 커피를 마셔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커피가 없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커피가 없으면 타인과 함께 있는 시간이 어색했고, 커피가 없으면 스트레스와 우울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술도, 담배도 잘하지 않다 보니 유일하게 즐기는 것이 커피였습니다.




어느 날 종이를 꺼내 내가 의지하는 것들을 쭈욱 적어봤습니다. 몇 가지를 쭈욱 적은 뒤 커피와 커피를 찾게 만드는 것들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에도 커피를 끊으려고 하루, 이틀 노력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커피만 끊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커피와 함께 같이 끊어낸 것이 음악과 사람이었습니다. 음악과 사람은 완전히 끊어낼 수는 없기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대신에 스피커로 듣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던 시간을 줄이며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던 시간을 없앴습니다.


커피 대신 이런저런 차를 마셔봤지만 아직 입에 딱 맞는 차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맹물 온수가 입에 맞지 않는 차보다 먹기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이 이렇게 맛있었나 싶어서 요즘은 온수를

커피처럼 마십니다.



커피만 끊어도 부작용은 있습니다. 두통과 변비, 우울감, 불안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커피를 5일 정도 끊어보니 그런 증상이 나타나긴 했습니다. 그래도 음악과 사람을 같이 줄인 탓인지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되는 기분도 들지만, 그럴 땐 가끔 온수를 한 잔 컵에 들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전에는 한 참을 이야기해도 할 말이 더 많은 것 같더니, 이제는 5~10분 정도만 이야기를 나눠도 기분이 환기되는 느낌이 듭니다.


커피, 음악, 사람 대신 내가 나에게 준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무슨 일이 생기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친한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하소연을 늘어놓거나 분노의 단어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용히 온수 한 잔을 들고 바람을 쐬며 잠시 혼자 있어 봅니다.


처음에는 20분, 30분이 지나도 안정이 되지 않더니 이제는 10분 정도 지나면


"세상 뭐 있어. 그냥 다 자기답게 사는 거지."


싶어 지면서


"일이나 하자."


라는 생각이 듭니다. 커피가 없어도, 음악이 없어도, 사람이 없어도 내가 나를 돌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커피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적당량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다만, 무언가에 심하게 의지하다 보니 그 의지하는 대상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많은 상처를 받는 내가 문제입니다. 그 상처가 계속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조차 흔들리게 되는 것 같아서 나를 찾고 싶은 마음에 일단 내가 '심하게' 의지하는 것들부터 끊어보기로 했습니다.


커피를 끊고 의지하지 않고 혼자 있는 힘을 기르고, 그래도 도저히 안되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아예 혼자서 살 수는 없는 세상이니까요.


중년의 하루하루는 꽤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 때도 이렇게 길고 힘들게 방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오늘도 내가 나를 다독이고 보살피며 버텨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글에 의지하는 마음인 것인데.... 그래도 브런치는 계속해도 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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