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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이 대화 중 사라지는 이유

중년에 다시 쓰는 일기(7)

by 다시

혼자 있길 좋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마음속에서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는 내향인입니다.


그런데, 가끔. 아주 드물게.

외향인과 친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A와는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대화를 해봤는데, 대화가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친해지면서 속 깊은 이야기도 터놓게 되었습니다.


B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내 마음의 문을 자꾸 두드렸습니다. 저는 관계의 선을 좀 명확히 긋는 스타일인데 그 선을 자꾸 넘으려고 하면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선을 넘어오는 모습이 불편하지 않았고 어느새 나의 선에 내가 무뎌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처음에는 몰랐는데 A와 B는 많은 사람들이 친해지고 싶어 하고 이미 주변에 친한 사람들이 많은 '인싸'였습니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과 친해지자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나와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대화는 잘 통했습니다.





그런데 외향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고, 그들 역시 대부분 외향인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부족한 나인데, 외향인 친구와 어울리려면 여러 명의 외향인들. 그것도 친하지 않은 외향인들과의 관계를 견뎌야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 빨리는' 상황이 계속 됐습니다.


마음속에서 계속 에너지가 방전 됐다고, 혼자만의 공간으로 대피하라는 신호음이 계속 울렸습니다.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하루하루 기가 빨리는 것 같은 상황은 좀처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외향인 인싸 친구가 싫은 것은 아닌데 A, B와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버거웠습니다.


결국 저는 대화 중간에 조용히 사라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왜 자꾸 도망가?"


결국 어느 날, 인싸 친구들이 제게 서운함을 표현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틈에 사라지는 제 모습이 서운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기도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 그냥 좀 바빠서..."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A, B와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좀 더 오래 서로를 잘 이해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기질 차이라는 간극을 좁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손절'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있었기에 가끔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잘 협력하고 있습니다.


자주 봐야 좋은 사람도 있지만, 가끔 보더라도 힘이 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요. 특히, 내향인인 저는 다수와의 대화보다는 1대 1 대화를 선호하고 더 잘 집중하기 때문에 외향인인 A와 B도 이런 저를 잘 이해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를 바꾸고 활발해져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때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억지스러우니 나답게 내향인의 장점을 발휘해서 사는 쪽이 훨씬 더 편한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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