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인대 부상... 하늘의 부상(副賞)이었나?

브런치로 하는 마음 재활 (5)

by 다시

십자인대 파열과 인대 손상으로 수술을 했다. 다리를 다친 뒤부터 내내 머릿속에서는 왜 다쳤는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수술 후 빠르면 한 달만 지나면 목발 없이 보행이 가능하다. 2~3달 정도 지나면 다시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서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마도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로우 앵글로 찍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젠 내게 무릎이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촬영 자세를 바꿔야 하나, 아예 업종을 바꿔야 하나, 나는 여태 왜 이 일을 해왔지,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건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업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들면서 멍~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이런 의문이 떠오를 때쯤 간호사가 들어왔다.


"가족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간호 병동이라 면회가 좀 제한적이었다. 더구나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병실로 들어오는 것보다는 내가 휠체어를 타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간호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병실 복도를 지날 때, 저 멀리서 병동 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문 뒤로 아내와 아이들의 보였다. 아이들은 낯선 병동에서도 해맑게 웃으며 깡총거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미소와 불안이 동시에 교차했다.

나를 지켜주는 가족의 모습에 힘이 났고, 가족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미안했다.


"내 삶의 이유가 저기 있었네. 아내와 아이들이 나의 우주이고, 나의 평화였네."





삶의 목표라는 것은 무언가 거창하고 인류 발전에 기여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청춘의 한 시절에는 그랬을 것이고, 나 역시도 그런 생각에 갇혀서 꽤 높은 이상을 갖고 그것을 이루겠다며 아등바등하던 때가 있었다. 주변에서 인정을 받기도 했고, 열정적이었으며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다 중년이 되면서 그 꿈이 나를 압박했다.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고, 점점 자신도 없어졌다. 그러 면서 나는 나 자신이 초라하고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중년이 되어 길 잃은 사춘기 소년처럼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며 혼란의 시간을 보냈다.


"중년이 된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더라?"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중년의 새로운 목표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청춘의 열정이 다시 피어오르지는 않았고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할 뿐이었다.


중년 이후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모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삶의 목표라면 무언가 거창하고 위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것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더 찾아보려 애썼었다.


그런데 면회를 온 가족을 보는 순간, 나의 그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느껴졌다. 솔직히 처음부터

가정의 행복이 중요했으면서 뭘 그리 대단한 꿈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나를 포장했을까. 이젠 그냥 더 이상

눈치 그만보고 나에게 솔직하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꿈의 크기와 행복을 누가 측정한단 말인가. 그저 내가 행복하고 내가 나의 행복에 솔직하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지구는 슈퍼맨이 지키겠지. 나는 우리 가족을 지켜야겠다. 그게 뭐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