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는 놈이냐
기억해 내라고 하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동요 대회에 나가게 되어 너무나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 막상 무대 위에서는 아무 가사도 기억해내지 못했던 것처럼.
뭔가가 기억이 나는 상황은 참 쓸데없다. 원피스 루피가 물에 빠진 것을 보다가 계곡에서 고모부가 안간힘을 쓰며 허우적거리던 게 생각나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어릴 때 장난으로 엘리베이터 전층을 다 눌러놓았던 게 생각나고, 술을 마시다가 참 진부하게도 누군가가 떠오른다.
수많은 기억들은 서로의 트리거가 되어 톱니처럼 돌고 돌아 깨어나고, 몇몇은 눈만 깜빡였을 뿐이라 깨어난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다시 잠에 든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떠올릴 수는 없기에 창고에 모아뒀다가 그 기억의 쓰임이 있을 때 쓰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 멋대로 '트리거'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불필요한 기억을 내보내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것일까?
각자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기억'의 의도는 둘 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