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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즈 Oct 28. 2024

하필 의료대란 시기에 암에 걸려서

2024년 의료대란 속 암환자

왜 하필 올해 암에 걸렸을까? 2024년 '의료대란'이라 일컫는 이 시국에 말이다.

2월부터 시작된 의료대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된 듯 보인다. 이 싸움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수술 앞두고 수술이 취소되고, 암 치료 일정이 잡히지도 않고, 언제 진료가 취소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 올해를 보내고 있다. 암에 걸려 심리의 기본 상태가 불안과 막막함인데, 의료대란은 그 불안을 가중시켰다. 암환자는 질병과 치유 걱정만 해도 큰 일인데, 2024년 암환자는 병원 치료 일정에 대한 불안감을 덤으로 안게 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문제가 언제 끝날지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스트레스는 암환자에게 안 좋은데, 평정심을 갖기가 너무 힘들다.



암수술 예약 취소

2월 26일 오전 11시 32분, 수술 취소 연락을 받았다.

전공의 파업 기사가 연일 뉴스에 나오면서 수술이 취소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수술할 의사가 문제가 아니라 수술장 예약이 어렵다고 했다. 수술장이 있어도 마취과 의사가 없어서 수술 진행이 어렵다고 했다. 예약된 수술의 70퍼센트 정도 하고 있어서 수술 일정이 잡히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 2024년 2월 26일 수술 취소 문자 >

[Web 발신] OO병원 유방외과입니다. 연락드린 내용처럼 병원 상황으로 인해 기존 수술 일정은 취소고 매주 수술 일정이 조금씩 확인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일정은 연락드리겠습니다.
                                                                                                      

암선고 후 애써 진정시켜 놨던 마음이 다시 요동쳤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수술과 치료에만 집중하자고 다독였다. 기왕 벌어진 일 씩씩하게 이겨보자고 다독였다. 갑자기 닥친 일에 정신 놓고 있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자고 다독였다.

이렇게 간신히 진정시켜 놓았는데, 수술 취소 연락을 받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수술 연락이 올 지 모르는 전화기를 쳐다보는 일 외엔. 전공의 파업이 종료되었다는 뉴스를 기다리는 것 외엔.

유방암은 진단 후 60일 이내에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 이렇게 무작정 시간을 흘려보내도 되는건지 걱정되고 불안했다.



너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니?

유방암 치료 일정에 대한 불안감은 난소낭종에 대한 걱정까지 키웠다.

1월에 유방암 수술 일정이 잡히지 않자, 난소낭종 수술부터 빨리 하려고 급하게 수술날짜를 잡았다. 난소암일지 모른다는 걱정에 난소낭종 제거 수술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얼른 제거해 버려야 속 시원할 것 같았다. 그러다 난소 양쪽 제거해야 한다는 의사 소견을 듣게 된 것이다.

유방암은 호르몬양성, HER2 양성, 삼중음성으로 성질이 나뉜다. 이 중 난소 절제가 도움이 되는 경우는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다. 그런데 유방암 수술을 안해서, 내 암의 성질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요즘은 호르몬 양성 유방암의 경우도 선제적으로 난소절제를 권하지 않는 추세이다.  

그런데 난소 양쪽 절제 소견을 듣고 나니, 혼란스러워졌다. 난소와 자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궁적출술을 한 경험이 있는 언니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암으로 판정이 난 놈부터 먼저 없애야지. 아직 판정이 안 난 난소는 다음 순서로 하고."


조언을 듣고, 암수술을 먼저 하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유방암 수술 후에 난소낭종 수술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렇게 많은 고민 끝에 힘겹게 결정한 것이었다.


그랬는데 유방암 수술이 취소되었다.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늘 침착한 조언을 해주는 찐언니는 안타까움을 담아 말했다.

"나즈, 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난소에도 유방에도 그런 것들이 생긴 거냐고 안타까워했다.

난 뭐라도 좋으니 선명해지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흐릿한 것이 걷히고 뭔가 결정이 되었으면....  수술 날짜와 치료 일정이 잡혔으면.....



난소낭종, 너의 정체는

유방암 수술 일정은 감감무소식이고, 난소 수술도 기약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마음을 곱게 쓰면 수술 날짜가 잡히지 않을까 하여 기도도 해봤다.

'나보다 더 위중한 환자부터 수술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저도 곧 수술받게 해 주세요.'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불안감은 더 커져갔고 심리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2차 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난소의 상태를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나의 난소는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뱃속을 파헤쳐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찾아간 2차 병원 의사는 수첩에 적어간 질문에 모두 답해줄 정도로 친절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는 않았다. 난소 낭종이 단순한 기능성 낭종으로 보이며, 아무 문제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헛된 꿈이었다.

오히려 난소낭종의 상태를 더 나쁘게 판단했다. 이번에도 난소 낭종 모양이 좋지 않다고 했다. 8센티 정도로 큰 크기도 문제인데, 낭종 안에 든 내용물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맑은 물이 들어 있으면 단순 낭종일 수 있는데 부유물 같은 것이 보여서 난소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자궁에도 근종이 있으니 자궁과 난소 모두 빠르게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정밀한 결과를 위해 MRI 검사를 권했다.   



공포의 MRI 검사

또 MRI 검사라니. 4년 전 담낭제거술 때 받은 MRI 검사의 공포 때문에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건강해져서 MRI 통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매일 만보씩 걸었는데...

또 MRI 통에 들어갔다. 4년 전보다 더 힘들었다. 하얀 통 속에 갇힌 느낌,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 내 귀 바로 옆에서 굴삭기로 콘크리트를 뚫고 있는 듯한 소리, 헤드폰과 귀마개를 뚫고 들리는 쿵쾅쿵쾅 다다다다 울리는 소음, 3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던 30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답답함에 비상시에 누르라고 쥐어준 버튼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여차하면 검사를 중단할 마음으로.

조영제를 넣으러 통 밖으로 잠시 나온 틈을 타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방사선사 선생님에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물었다.

"20분 지났어요. 앞으로 10분만 더 하면 됩니다. 잘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하시면 됩니다."

검사 시작 전에 말해주지. 그랬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을 견디는 데 좀 나았을텐데.


MRI 검사는 3분간 4번, 2분간 2번 하고 난 뒤, 조영제를 넣고 다시 3분간 3번, 2분간 1번 검사하겠습니다. 시간은 조영제 넣기 전에 20분, 조영제를 넣고 난 후 10분, 총 30분이 소요됩니다.


이런 말을 왜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얼마나 이를 앙다물었는지 온몸이 쑤시고 턱이 아팠다. 비수면 위내시경 할 때 간호사가 “잘하고 있어요. 거의 다 왔어요."라고 해 준 말들이 힘이 되었던 것처럼 MRI 검사도 기계음으로 안내하지 말고, 사람의 목소리로 안내해 주면 안 되는 걸까?



다시 희망, 그리고 분노

MRI 검사 결과가 나왔다. 난소암일 가능성보다는 양성일 가능성이 더 높게 나왔다. 그러나 의사는 수술해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안개가 조금 걷혔다. 양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도 나왔고, 난소와 자궁은 없애야겠다고 결단을 내릴 수 있어서였다.

대학병원의 수술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총선용 줄다리기라고 생각했던 의정갈등은 악화일로에 있었다.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2차 병원에서 난소 자궁 적출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학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유방암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일주일 뒤에 입원하라고.

전화를 받고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수술이 잡혔다는 것만으로도, 취소된 것을 다시 하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수술날짜가 잡힌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해 준 의료대란의 책임자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 작은 것에 기뻐할 줄 알게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해진 대로 수술받았다면 하지 않았어도 될 고민들이었다.

암환자에게 힘든 시간은 치료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불투명한 시간이다. 의료대란은 그 시간을 짙은 암흑 속으로 만들어버렸다.

의료대란으로 피해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기자회견을 보고는 분노가 치밀었다.

수술 취소 몇 명, 응급실 이용 현황 몇 명 등의 숫자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도 막대하다. 빙산의 일각만 보고 말하지 말란 말이다. 그 밑에 깔린 환자들의 눈물과 걱정과 불안을 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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