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질병휴직한 교사
쉴 수 있다. 23년 만에.
암에 걸려 삶의 밑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때, 휴직은 한줄기 빛이었다.
난 교사라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경력 25년 즈음되는 친구와 언니들이 모여 명예퇴직 언제 할 것인지 이야기 나눌 때에도 나는 확고하게 말했다. 아직은 이 일이 좋다고.
정년퇴직하면 기가 다 빠져 어디 여행 다닐 힘도 없다더라, 교사는, 특히 여교사는 사망으로 연금 수령 기간이 몇 년 되지도 않는다더라 등의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런데 갑자기 교직에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렸다. 학교와 집만 오가던 내가 암에 걸렸으니, 교직생활에서 암에 걸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후부터다. 학교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와글와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그곳은 발암물질 가득한 유해환경이었다. 오직 휴직만이 살 길이었다.
그런데 휴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줄어들 월급으로 매달 나가는 정기 지출을 생각하니, 6개월만 휴직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2학기에 돌아가 적응 안된 아이들과 감당해야할 시간들은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1년 휴직은 내게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되었다.
그런데 항암 치료를 받더라도 1년 진단서가 잘 안 나온다고 했다. 누군가는 한의원에 가서 유방암 환자가 먹지 않아야 할 한약을 짓고 진단서를 받아와 휴직했다고 했다. 누군가는 지금부터 정신과 병원에 다녀 치료를 받아 그 진단서로 1년 휴직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진단서가 6개월 밖에 나오지 않으면 2학기는 교직에 단 한 번 쓸 수 있는 무급휴직(자율연수휴직) 카드를 써야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질병휴직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보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암에 걸렸는데 휴직이 이렇게 어렵다니. 뭣하러 그렇게까지 학교에 목매면서 살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휴직원 내러 가는 길
학교에 휴직원 내러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하며 학교를 찾아가던 출근길이 떠올랐다. 외곽순환 고속도로가 익숙지 않아 진출로를 잘못 빠져나와 헤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오랜만에 근무한 중학교 적응을 위해 일찍 가야 한다는 강박은 익숙지 않지만 속도가 빠른 고속도로를 타게 했다. 그러고 보면 늘 전장에 나가는 사람처럼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려야 하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고속도로 운전을 싫어하던 내가 매일 고속도로로 달려야 했다.
지난날을 돌아보다 문득,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왔던 내 삶에 연민이 느껴졌다. 암에 걸리고 나니, 내 삶은 온통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만 같았다.
두 달 만에 간 학교
두 달 만에 학교에 갔다. 졸업식 날 받은 건강검진 결과 통보 문자 이후 병원 일정이 이어졌다. 유방외과 검진, 유방암 선고, 대학병원 진료로 나는 다른 세계에 들어섰다.
학교는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져 돌아왔다.
학교 1층 택배실에는 새 학년이 시작되면 학년 프로그램으로 사용하려고 구입해 둔 물품 택배상자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2024년 사회성 예산 삭감에 대비하여 작년 말 남은 예산을 끌어모아 미리 사둔 것이다. 평소 나답지 않게 앞날을 준비했던 그 물품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다. 쌓여 있는 택배상자를 보며 묘한 박탈감을 느꼈다. 학교에 오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강제로 못 오게 되는 상황은 싫다.
뭐 어쩌라는 건지. 암선고 이후 감정은 제멋대로 널뛴다.
짐 정리하러 3층 교무실로 올라갔다. 책상 위에는 졸업식 때 사용한 코사지가 마른 채 놓여 있다. 책상은 금방 다시 올 것처럼 대충 정리하고 갔던 상태 그대로다. 방학 중에도 고입 관련 업무로 몇 차례 학교에 들를 것으로 생각했었다. 주변을 정리할 새 없이 정신없이 살았던 시간을 보여주듯 책상과 사물함의 짐은 산더미다. 미처 버리지 못한 수행평가 결과물, 각종 대회 결과물, 수업 학습지 등이 섞여 있다. 개인정보 문서를 문서세단기에 넣어 파쇄하고 정리하려면 하루는 족히 걸릴 것 같았다. 학교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아 박스에 대충 쑤셔 넣었다. 그렇게 쓸어 담은 상자들을 상담실 캐비닛에 넣어두고, 도망치듯 교무실에서 나왔다.
질병휴직은 처음이라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방학 중에 사람이 없을 시간대를 노려 늦은 오후, 1층 본교무실로 갔다. 다행히 교무실에는 실무사와 교감선생님만 계셨다. 교감선생님과 인사 나누고 바로 휴직 이야기를 꺼냈다.
“두 달 병가를 쓰고, 남은 연가를 쓴 다음에 질병휴직할 수 있다던데, 그럴 수 있나요?”
“그렇죠. 그렇게 해도 되죠.”
그렇게 해도 된다고? 그런데 왜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걸까? 질병휴직은 난생처음인데 말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라 믿지 말고, 내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학교는 학교에서 다친 나를 보호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병가 60일
< 일반 질병휴직 >
일반 병가(60일) --> 법정 연가 사용 가능 --> 일반 질병휴직(1년, 부득이한 경우 1년 연장 가능)
2023년 교육공무원 인사실무편람(중등) p.201
병가는 나이스로 기안하고, 진단서를 첨부하면 된다는 학교의 안내를 받았다. 병가에 사용할 진단서에 요양기간이 표시되어야 하는지 주변에 수소문했다. 오랜 기간 교무부장했던 샘이 복무규정을 뒤지고, 교육청 담당자와 통화해서 알려주었다. 병가에는 병명만 들어간 진단서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 전이라 최종병기가 아닌, 임상적 추정 소견으로 유방암이라고 적힌 진단서를 첨부하여 병가를 신청했다.
< 병가 때 제출한 진단서 >
치료 내용 및 향후 치료에 대한 소견 : 상기 환자 유방암 진단으로 유방 절제술 및 필요시 감시림프절 생검술 시행 예정임. 향후 보조치료하며 정기적인 추적관찰 예정임.
진단서를 첨부하지 못한 경우에는 우선 연가로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찾아준 분도 있었다.
<교원휴가 관련 질의 답변 사례집> (2022.7월, 교육부)
갑작스러운 병가 사유 발생으로 병가 사용 당일 진단서를 첨부하지 못한 경우에는 우선 연가로 처리하고, 진단서 발급 후 병가로 소급처리 가능
- 2023년 교육공무원 인사실무편람(중등) 296쪽-
병가에 이은 연가는 쓸 수 없었다. 1년 휴직 예정자는 연가 일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질병휴직을 가능케 한 '수개월'
학교에서는 질병휴직에 기간이 명시된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유방암 수술 날짜도 안 잡혔고, 수술해 봐야 정확한 병기를 알 수 있어 수술 후 진단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수소문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다른 지역 교육청 장학사에게까지 알아봤다. <2023년 교육공무원 인사실무편람>에는 ‘기간이 명시된 진단서’라는 문구가 없다. 그런데 관행적으로 기간이 명시된 진단서 제출을 요구한다고 했다.
‘교육공무원 인사실무편람’을 뒤지다 생각했다. 모든 일을 이렇게 각자 책자와 법령집 찾아가며 처리할 거면 부서는 왜 나누고 업무는 뭣하러 분장한 걸까? 이런 식의 각개전투로 업무의 비중이 늘어나면 결국 수업과 생활교육에 쏟는 에너지가 줄어들게 될 텐데 말이다. (암에 걸려도 쓸데없는 걱정은 여전하다.)
질병휴직에 필요한 진단서 문제는 친구가 해결해 줬다. 그 학교에는 유방암 환자가 둘이나 있다고 했다. 그 두 분이 1년 휴직한 진단서 문구를 교감선생님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수개월'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수개월' 한 단어면 되는 것이었다니. 휴직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시간이 허망했다.
유방암 수술 3주 후, 수술결과를 듣는 진료 시간에 의사에게 부탁했다.
"제가 교사라서 학기 중간에 교사가 바뀌면 교사, 학생 다 힘들거든요. 1년 휴직을 해야 하는데 진단서에 '수개월 치료를 요함' 문구를 넣어주실 수 있을까요?"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대학병원 의사는 진단서에 치료기간을 잘 써주지 않는다 했다. 요새는 암이라고 해도 6개월밖에 안 써준다고도 했다. 그래서 긴장하며 부탁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셨다.
<질병휴직 때 제출한 진단서>
* 치료 내용 및 향후 치료에 대한 소견
입원기간 : 2024-03-
수술일 :2024-03-
수술명 : 유방 부분절제술 및 감시림프절생검술
상기 환자 수술 이후 최소 수개월 이상의 보조치료 예정됨.
이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하며, 기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질병휴직 가능한 다른 학교 사례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어떤 논의가 더 있었는지 모르지만 암튼 더 이상의 추가서류를 요구하진 않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년 질병휴직할 수 있었다.
암에 걸려 정신없는 와중에 휴직 절차를 상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학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암에 걸려보지 않았으니 암에 걸린 사람의 심정을 모를 테지.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암이라는 세계에 들어온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덜 헤맸으면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