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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즈 Nov 04. 2024

아프면 서러운 '에이징 솔로'

늘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제목을 쓰고 보니, 올해 내내 아파서 서러운 상태라 말하는 것 같아 몇 번을 썼다 지웠다.

'에이징 솔로'는 '혼자 나이 들어가는 상태, 사람'을 뜻한다. 김희경 책(김희경, "에이징 솔로", 동아시아, 2023)의 용어를 빌려왔다.


이번 9화의 글쓰기는 유독 어려웠다. 글쓰기 싫어서 안 하던 청소를 다 하고, 기타 연습을 하며 해야 할 할 일을 미루고 또 미뤘다. 이 주제가 싫으면 다른 주제로 쓰면 그만인데, 이 주제를 버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었던 순간을 들여다보고, 찬찬히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하기 싫은 마음을 어르고 달래 책상에 앉혔다.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고 꼬셔서, 마음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했다. 노트북 자판을 통해 토해낸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보니, 내 마음이 이번 글쓰기에 동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 안의 구덩이를 들여다보기 싫었다. 바닥을 쳤던 상태를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글이 에이징 솔로에게 던지는 2대 경고 '나이 들면 외롭다'와 '아플 때 서럽다'의 증언록이 될 것 같아서였다.

'혼자 살면 젊을 때나 좋지 나이 들어 외롭다'라는 말은 '혼자 살면 아플 때 서럽다'와 함께 '혼삶'의 입구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오래되고 불길한 2대 경고다. 이 경고를 뒤집으면 사람들은 외로울까 두렵고, 아플 때 돌봄 문제가 걱정되어서 가족을 꾸린다는 말도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두 문제를 가족 밖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혼삶'에 외로움과 아픔을 덧칠한다.
                                      《에이징 솔로》80~81쪽


에이징 솔로가 늘 외로운 것도 아닌데 그런 프레임으로 내가 보여지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외로운 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또 아니었다.

그런데 그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싫다고 내 감정을 모른 척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전조

전조는 기타 레슨 시간에 나타났다. Colde의 "Your dog loves you"를 배우고 있었다.


"이 부분 연주 따라 해보세요."


선생님이 시범을 보였다.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데 안된다.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서 잘 안 움직인다.


"아. 이 리듬이 전에 배운 보사노바 리듬이에요. 보사노바 리듬 기억나시죠?"


전에 배운 부분과 연결해서 연주법을 알려주시는데, 리듬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뇌가 작동을 멈춘 듯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날은 기타레슨 시간들 중 가장 최악의 날이었다. 도무지 레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암이라고 선고받은 날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다 공중으로 흩어지고,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꾸 시계만 쳐다봤다. 내게 기타레슨은 언제 끝났는지 모르게 휘리릭 지나가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런 레슨시간 50분이 그날만은 지독하게 더디게 갔다.

이상한 것은 목도 잠겨 목소리도 안 나온 것이다. 목을 쓰지 않았는데 말이다. 몸에 또다른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걱정스런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건강 정보를 뒤졌다. 긴장하면 기도가 좁아져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난소 자궁 수술을 위해 입원하기 전전날이었다. 수술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유방암 수술 날짜가 안 잡히고 있을 때, 난소 자궁 수술을 먼저 해치워버리고 싶어 수술 날짜를 빨리 잡아달라고 했다. 수술상담실에서 1주일 후에 비어 있는 수술 일정이 있다고 그날을 잡아주었다. 오빠는 지방에 있고, 가까이 사는 동생들은 회사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수술시간에 맞춰 오는 것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수술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고, 입원하면 몇 시에 수술하는지 알려준다고 했다.  



폭발

기타 레슨이 끝난 후 산책하러 나갔다. 찬 바람을 쐬면 좀 나을까 싶어서였다.

산책 친구로 AC/DC의 "Back in black" 음악을 골랐다.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줄 음악이 필요했다

‘빰. 빠바밤. 빠바밤. 빠밤빠밤빠밤빠밤'

강한 비트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눈물도 주르륵주르륵 흘러나왔다. 파워풀한 드럼과 일렉기타 소리를 듣는데, 눈물은 닦을 새도 없이 흘러내렸다.

단순한 수술 전 불안인 줄 알았던 것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난소는 수술 후에 정체가 밝혀진다. 수술후 난소암이라고 밝혀지면 닥칠, 또다른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두려움이 장악해버려 들끓고 있던 마음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친구들 단톡방에서는 수술날 누가 보호자로 갈지 한창 의논 중이었다. 랭이는 그날 학교에 일이 있어서 그 일이 끝나고 오고, 쏭이 남편 출근하고 난 뒤 오겠다고 했다.


산책길에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랭이에게 전화했다.

"그래서 수술날 누가 온다고?"

목이 잠겨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저음으로 깔고 차분한 척 말했다.


"내가 그날 학교에 일이 있어서 그것 끝나고 가고, 그전에 쏭이 남편 출근하고 난 뒤 가기로 했어."


그 말을 들은 뒤였다.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수술을 아침에 할 수도 있는데, 난 보호자 없어서 수술 못할 수도 있는데, 난 어쩌라고."


4년 전 담낭 수술할 때 수술 준비 시간이 아침 8시였다. 수술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첫 수술로 잡히면 어떡하냐는 걱정이었다.


"너 울어?"

랭이는 내 목소리의 떨림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걱정하지 마. 내가 갈게. 학교 안 가고 내가 갈게. 설마 내가 너 수술할 때 아무도 없게 하겠냐? 우리가 그러겠냐? 내가 지금 너희 집으로 갈까?"


"아니야. 괜찮아. 오지마..."


전화를 끊고 더 많이 울었다. 내 불안과 마주한 시간이었다. 하루종일 불안했던 감정은 외로움이었단 걸 그때 알았다. 혼자라고 느껴본 적 없었는데, 그땐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고 느꼈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느끼지 않았을, 엄마의 부재를 느낀 날이었다. 누구한테라도 보호자로 가달라고 하면 같이 갈 사람은 있지만, 당연히 가기로 정해진 딱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서러웠다.


나 혼자구나.

수술 날 같이 갈 사람 하나 없구나.

결국에 혼자 남는구나.


이 감정을 모른척하고 싶었다. 낯선 '외로움'의 감정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았던 내가, 외로움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해소

랭이는 대학 때부터 붙어 다니던 30년 지기 친구다.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들은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대학 때도 그렇게 붙어 다니더니, 둘 다 결혼도 안 하고 아직도 붙어 다니냐? 그냥 니들 둘이 살아라."


암선고 후 열흘을 집에서만 보내던 내가 답답하다고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랭이었다.

그렇게 가게 된 춘천여행에서 죽림동 성당에 갔을 때였다. 랭이는 대뜸 성당에 들어가 기도 좀 하고 오라고 했다. 갑자기 병 걸렸다고 얍삽하게 기도하고 오라는 거냐고 했더니, 종교란 원래 그런 거라는 말로 나를 웃게 했다. 암을 내 입 밖으로 꺼내게 하고 그것을 개그 소재로 삼아 웃게 한 사람도 랭이었다.

"니는 친구가 암환자인데 내 앞에서 술을 먹고 싶냐",  "시금치 두부 카레가 항암에 좋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동굴 속에서 조금씩 걸어 나오게 한 사람도 랭이었다.


하지만 이런 친구도, 말 안 하면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내 속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병원에 누가 올 건지 대놓고 물어봤어야 했다. 단톡방에 ‘누가 갈래',  ‘시간이 안되네’ 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불안해하고 있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고. 그래서 어떻게 정리됐냐고 대놓고 물어봤어야 했다.

랭이는 수술 전날 와서 병원에서 같이 자고, 쏭에게 나를 넘겨주고 학교 가려는 계획이었다고 했다. 나는 수술 전날엔 보호자 필요 없으니 랭이에게 오지 말라고 했었다. 그래서 난 수술 전날 랭이가 안 온다 생각하고 있었고, 랭이는 수술전날부터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혼자 오해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난 묻지 못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 나온 말처럼, '도와줘'라는 용기 있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어야,  《에이징 솔로》책에 대안으로 제시된 ‘돌봄 품앗이’든 ‘돌봄 공유 플랫폼’이든 할 것 아니냔 말이다.


그러나 그 때의 난 말하지 못했다. 도와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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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품앗이 :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품앗이 모임에 가입해서 서로 시간 될 때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방식으로 마일리지를 쌓고, 내가 필요할 때 그 마일리지로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는 것.   

-《에이징 솔로》99쪽 -


*돌봄 공유 플랫폼 : 사이트에 커뮤니티를 만들어 돌봄을 함께할 사람을 초대하고, 각자 제공 가능한 도움과 일정을 올리고 캘린더를 공유한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도움(Losta Helping Hands)'을 비롯해 '케어링 브릿지(Careing Bridge)', '밀 트레인(Meal Train)' 등의 돌봄 공유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다.

-《에이징 솔로》102~10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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