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수술 과정 기록
암환자의 머릿속이 평온했던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방암 수술 시기였다. 수술은 큰 일이지만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따르며 상처 회복에만 집중하다 보니, 번잡한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치료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암진단 초기가 마음이 가장 복잡했다.
암환자의 머릿속이 비어있던 이 시기는 그래서 쓸 것이 별로 없다. 이번 10화는 암진단받은 초기 환우들을 위해 수술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춰 글을 써보려 한다.
유방암 수술 일정
병원에서 안내한 유방암 수술 일정이다. 부분절제와 전절제, 유방암 기수에 따라 수술 일정은 차이가 있지만 보통 3~5일 정도의 입원 기간이 소요된다.
입원할 준비
수술 전 가장 신경 쓴 것은 감기와 코로나 조심이었다. 감기와 코로나에 걸리면 수술받을 수 없다. 전공의 파업으로 힘들게 잡힌 수술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체력을 기르는 데 힘썼다. 수술 후 회복에도 체력이 필요하니까.
병원 안내문에 따르면, 수술 전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공단 검진, 치아 스케일링, 독감 예방주사, 파마, 염색 등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수술직후에는 하기 어렵고, 항암치료 전에 시행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난 수술 전에 치과 진료를 받았다. 잇몸 시림 현상이 있어서였다. 치과 치료후 잇몸 시림 현상이 없어졌는데, 수술 후에 다시 나타났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몸의 약한 부위에서 증상이 발현되는 것 같다. 기력을 회복하자, 잇몸 시림 현상이 깜쪽같이 사라졌다. 잘 먹고 잘 자서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온수매트는 신의 한 수
퇴원 후 지낼 공간을 정리하고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수술 전에 미리 해두었다. 침대에 온수매트를 깔고, 음악 플레이어, 태블릿 거치대 등을 설치하여 수술 후 편안한 휴식이 될 수 있게 방을 세팅했다. 그중 온수매트는 단연 신의 한 수였다. 3월이었지만 약간 쌀쌀한 기운이 있었다. 산책하고 돌아와 온수매트를 켜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누우면,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잠이 잘 왔다.
산책하고 자고, 산책하고 자고, 산책하고 자고 이렇게 3번 반복하면 하루가 다 갔다. 몸이 회복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먹거리 준비는 백미로만 밥을 지어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었다. 수술 후에는 소화흡수가 잘되는 백미를 먹는 것이 좋다는 "암환자의 식이요법" 안내문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동생에게 맛집에서 추어탕을 포장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라고 부탁했다. 밀키트 말고, 반드시 맛집을 찾아가 포장해 와서 넣어두라고 구체적으로 부탁했다. 이런 세밀함이 남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다. 추어탕은 고단백 식품으로 수술환자의 영양식으로 매우 좋았다.
병실 짐은 캐리어 하나, 배낭 하나에 다 넣었다.
수건, 칫솔, 치약, 비누, 물 컵, 티슈, 물티슈, 슬리퍼 2켤레, 보호자 침구, 책, 수첩, 태블릿, 이어폰, 속옷
이 정도로 챙겼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세세하게 챙기려고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빠뜨린 게 있으면 병원 1층이나 지하에 있는 편의점에 가면 되니까. 편의점에는 필요한 게 다 있다.
여행 가는 것처럼, 맘 편히
여행 갈 때 늘 갖고 다니는 초록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여행 가는 거라고 생각하자고.
수술 결과에 따라 내 삶은 아주 많이 달라지겠지만, 그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걱정하고 고민하고 대비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의사의 손, 하늘의 뜻에 맡겨야 했다. 내 몸뚱이를 온전히 맡기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결과가 나오면 그때 고민하기로 했다. 항암을 할지 안 할지, 방사선을 할지 안 할지 결과가 나오면.
맘 편히 힘 빼고 몸을 내맡기자고 여러 번 속으로 되뇌었다.
'여행 가는 것처럼 가자. 맘 편히 가자.'
여행 떠날 때처럼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병원에 갔다.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수술 전날엔 보호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서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입원 기간엔 나리가 보호자로 있어주기로 했다. 나리는 4년 전 담낭 수술 때에도 곁을 지켜준 친구다. 나리가 일 끝나고 저녁때 온다고 했다. 수술 전날에는 굳이 안 와도 된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더니, 자기랑 같이 있는 게 불편하냐고 나리가 물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혼자 해보려고 한 것이 도리어 나리 기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 끝내고 보호자 침대에서 불편하게 자야 하는 게 미안해서 그런 거라고 나리에게 설명했다. 이 과정을 단톡방에서 지켜본 랭이가 전화해서 말했다. 나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고. 마음 불편하게 있는 것보다 몸 불편하게 병원에서 자는 것이 편한 애라고.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쏭이 입원수속하는 시간에 맞춰 오겠다는 것이다. 입원 수속이랄 것도 없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온다고 하기에 얼굴이나 보자고 오라고 했다. 쏭이 와서 병원 식당에서 같이 점심 먹고, 차 마시고, 입원병동에 같이 갔다.
저녁에는 나리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느라 수술 전날의 불안감을 잊었다.
수술 전날 보호자가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몸은 보호자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심리상태는 필요했었나 보다. 혼자인 것보다는 둘이 있어 좋았다. 혼자 있었다면 더 많은 생각과 잡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것 같다.
요새 암경험자 윤도현의 흰수염고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가사에 꽂혀서.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너무 혼자서 해내려고 하지 말라는.
링거줄에 묶인 신세
유방암 수술 입원 중 치료 일정은 위의 표를 참고하면 된다. 병원안내문인데 금식, 활동, 검사 등에 관한 자세한 안내가 나와 있다.
병실을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니 더 이상 여행자 행세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간호사실에서 수술 전 문진표를 작성하고 키와 몸무게, 팔둘레를 측정했다. 그리고 유방암 수술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다음 날 수술하게 될 환자들 열다섯 명 정도가 함께 했다. 간호사는 수술과정과 수술후 주의할점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유방암 수술은 다른 수술에 비해 통증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했다.
유방외과에 가서 유방촬영, 유방 초음파 촬영을 했다. 초음파 촬영으로 병변을 확인하며 수술 부위에 기타 줄 같은 와이어를 꽂았다. 기다란 와이어를 테이프로 붙여두었지만, 와이어가 빠질까 봐 신경이 쓰였다. 안그래도 수술전날이라 안 오는 잠을 와이어가 더 멀리 쫓아버렸다.
저녁 즈음에는 간호사가 링거를 달았다. 링거줄에 묶이는 순간 행동의 제약이 생긴다. 병원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것에서 침대 주변, 병실, 병동 복도로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환자 움직임을 최소화하려고 좀 더 일찍 링거줄로 포박하는 게 아닐까.
휠체어 타고 수술장으로
< 수술 시간 안내 >
수술 시간은 약 1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수술 전 마취를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 바로 병실로 오는 것이 아니고 수술 직후에는 어느 정도 회복실에서 의료진이 세심한 관찰을 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느끼기에는 약 3시간을 기다리실 수 있습니다. 만약 재건 수술을 함께 시행하게 된다면, 수술 방법에 따라 짧게는 1시간, 길게는 5시간 정도의 수술시간이 추가됩니다.
- 대학병원 안내문 -
침대에 누워 수술장으로 가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의 '위기, 절정'부분에 나온다. 보호자가 달려와 손잡으며 울고, 이제 그만 들어가야 한다며 손을 떼어내고 의료진이 수술실 안으로 침대를 끌고 들어가는 장면 말이다.
유방암 수술은 이런 장면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다. 유방암 수술은 환자 상태가 위중하지 않으면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한다. 휠체어 이동은 너무 비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수술장 번호가 100번대가 넘어갔던 것 같다. 그 많은 수술실 가운데 내 수술대가 놓인 곳으로 옮겨졌다.
수술실 밖에서 얼마간 대기했다. 나에겐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는 다시 수술장 안으로 옮겨졌다.
추운 수술장, 따뜻한 손길
수술대 위에 누웠다.
다시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하늘에 모든 걸 맡기겠다고. 여러 번 되뇌었지만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의사가 내 손 위에 손을 얹어 토닥거리며 말했다.
"다 잘 될 거예요."
그 말 한마디에 긴장감이 절반으로 쑥 줄어들었다.
그리고 의사는 다음 이야기를 건넸다.
"지금부터는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셔야 합니다."
무엇을 솔직하게 말하라는 걸까 생각하고 있는데 질문이 들어왔다.
"이름이 뭡니까? 생년월일은?"
풋! 하고 웃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잠이 들었다. 마취상태를 확인하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차가운 수술장이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온도가 낮아서 추웠다. 안 그래도 긴장돼서 덜덜 떨고 있었는데 추위는 더 움츠러들게 했다. 따뜻한 손길과 말 한마디는 그래서 더 따숩게 느껴졌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해 병원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감사의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수술 도중 병동 이사해 본 적 있니?
수술 도중 병동 이사를 가게 됐다.
전공의 파업으로 수술실 운영이 70% 정도 가동된다고 했다. 이로 인해 수술 환자가 줄면서 별관 병동을 폐쇄하고 본관 병동으로 통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병원 적자를 줄여보고자 하는 병원측의 결정이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며 항의해 봤지만 항의받을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유방암 병동이 따로 있어 그곳에 모든 시스템이 갖춰진 유방외과 간호사들은 남의 병동에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그들도 피해자였다.
나리는 나를 수술장으로 보내고 짐을 싸야 했다. 그리고 수술하는 동안 동생이 짐을 옮겼다고 했다. 수술장으로 떠난 곳은 별관이었는데, 수술이 끝나 돌아간 곳은 본관이었다.
2024년 의료대란 시기에는 이런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수술 후 심호흡
수술 후 병실에 돌아와 6시간 동안 물을 마실 수 없다. 잠을 자도 안된다. 전신마취로 폐기능이 멈춰 있었기 때문에 쪼그라든 폐를 펴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한다. 가래에 의해 기관지가 막히면서 폐렴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폐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심호흡을 열심히 했다. 잠들려고 하면 동생이 계속 깨웠다. 물로 입을 헹구게도 하고, 말을 시키기도 해서 잠들지 않게 했다.
수술할 때는 가족이 있어야 한다며, 동생은 휴가를 내고 병원에 온 것이었다. 동생에게 무척 고마웠지만, 실은 나리가 더 편했다. 환자복도 갈아입고 싶었다. 동생하고 시간 보내라며 병원 내 카페에 가 있는 나리에게 전화해서 와달라고 했다. 나리가 오자, 마음이 안정되었다. 병동이사한 캐리어의 짐들도 다시 꺼내고 세팅이 시작되었다. 휴지도 꺼내어지고 물티슈도 제자리에 놓여졌다.
남동생들은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시키지 않은 일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병동 이사한 캐리어 짐들은 나리가 오기 전까지 그대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남동생들을 좋아한다. 진짜로. 독거누나를 보살피는 착한 남동생들이다. 좀 더 자세하게 부탁하면 될 일이다.
무의식의 세계
"환자분, 수술 잘 끝났고요. 깨어나 보세요."
수술 회복실에서였다. 정신이 들자마자 물었다.
"저 림프절 생검술 했나요?"
의사 회진 때 물어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병실로 돌아가 의사 회진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던 주치의가 왔고, 수첩에 적어둔 질문을 했다.
"림프절 생검술 했나요?"
"종양 크기는 얼마나 되나요?"
"조직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방사선 치료 해야 하나요?"
의사가 갈까봐, 다다다 쏟아내는 질문에 의사가 답했다.
"이 질문들 중 거의 대부분을 마취상태에서 했어요. 참 궁금한 게 많은 환자네요."
이렇게 대답하는 의사의 태도에 나리는 몹시 기분 나빠했다. 질문하면 그냥 알려주면 될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가 기분 나쁘다고 했다.
나리에게 수술장에서 손잡아준 장면을 이야기했다. 차가워 보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일 거라고. 말투만 저렇게 보이는 거라고.
그나저나 얼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으면 마취 상태에서 이 질문을 했던 걸까. 무의식의 세계란 참으로 무섭다.
의사의 답변은 이러했다.
1. 림프절은 괜찮아 보이는데 자세한 건 2주 후
2. 종양크기 : 현미경으로 자세하게 2주 후
3. 조직검사 결과 : 2주 후
4. 방사선 치료 해야 함
모든 건 2주후에 알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 기다림의 시간이다.
나즈를 지키는 어벤저스
전공의 파업으로 병원이 비상운영되는 시기라서 그랬던 것인지 오전 9시, 아침을 먹자마자 퇴원하라고 했다. 1시에 입원하고 9시에 퇴원이라니. 만 이틀도 채 안 되는 44시간 만에 퇴원이다.
쫑언니가 퇴원시키러 온다고 했다. 대학 동기들 총출동이다. 입원할 때 쏭, 간병하러 온 나리, 퇴원시키러 온 쫑 언니. 3월에 학교는 너무 바빠 병원에 못 온 랭이가 고맙다며 단톡방에 말했다.
"우리들, 나즈를 지키는 어벤저스 같다."
정말 그랬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일지라도, 때론 함께 해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흰수염 고래" 노래처럼
어쩌면 그 험한 길에 지칠지 몰라
걸어도 걸어도 더딘 발걸음에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