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수술 회복기
기운 없는 내 몸은 낯설어
얼마 전 사범대에 다니는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교육학 시간에 '학창 시절 기억나는 선생님'에 대한 보고서를 써오라고 했는데 나에 대해 썼다고 했다. 제자가 보내준 글에서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선생님이다. 특이하고 의미 있는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교사보다는 왠지 뮤지컬 배우 쪽에 많이 있을 거 같은 유형이다. 나와 정말 다르지만 닮고 싶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에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돋보이고 통통 튀는 생각에서는 보신주의에 빠진 교사들에 대한 편견이 벗겨진다. 이 분은 나의 진학과 내가 삶의 토대를 다지는 데에 지대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 제자가 쓴 보고서, '학창 시절 기억나는 선생님' 중에서 -
에너지 만땅, 열정 가득이었던 나였다. 그렇다. 과거형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유방암 수술 후 나의 에너지는 바닥난 상태였다. 배터리 성능 최대치 2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됐다. 조금만 움직여도 에너지가 바닥났다. 잠깐의 활동에도 금세 충전이 필요하다고 깜박깜박 빨간 불이 들어왔다. 산책하는 길에 다리가 후달거려 다리가 꺾이기도 했다. 어찌나 느린 걸음으로 걷는지, 지팡이를 짚고 가던 할아버지가 자기보다 더 느리게 걷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 갈 정도였다.
그런 에너지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렇게 기운 없는 내 몸도 처음이었다. 그동안 에너지 만땅이라고 교만했던 나를 반성했다. 에너지가 없어 빨리 걷는 것조차 힘든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학교에서 다른 교사들을 보며 '왜 이렇게 안 하지? 관심과 에너지를 조금만 더 쓰면 될 텐데'라고 물음표를 그렸던 나를 반성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어도 뛸 수 없는 처지가 되어서야 '절전형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을 이완시키는 안온함
유방암 수술후 퇴원하는 날은 오히려 에너지가 꽉 찬 날이었다. 에너지도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지 그날은 에너지가 70 퍼센트 정도는 됐다.
링거줄에서 해방되었고, 암덩어리를 드디어 떼어내 버렸고, 내 집에 왔고, 생각보다 움직이는데 힘들지 않고, 통증이 그리 심하지 않다는 데서 오는 들뜸이었다.
그러나 들뜸이 가라앉자, 몸의 상태를 자각하게 되었다. 기운도 없고, 몸은 축축 늘어지고 금세 피곤해졌다. 온몸이 쑤시고 힘들었다. 생살을 떼어냈으니 당연히 나올만한 증상이었다. 피만 뽑아도 그 피를 다시 만드느라 에너지를 쓰는데, 생살을 떼어냈으니 얼마나 더하겠는가. 암덩어리와 그 주변, 겨드랑이 림프절을 떼어냈으니 몸에서 얼마나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을 것인가 말이다.
상처를 회복하고 세포와 새 살을 재생하느라 바쁜 몸에게 전폭적인 응원을 보냈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박수 치면서. 박수와 응원에 힘입어 내 몸은 회복에 박차를 가했다. 하루가 다르게 배터리 성능 최대치가 늘어났다. 몸 안에서 세포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게 느껴졌다. 떼어낸 자리를 채우느라, 상처들을 복원하느라 몸 안의 세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열일하는 세포들에게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었다. 에너지원 공급을 위해 많이 먹고 많이 잤다. 많이 자야 빨리 낫는다는 말을 듣고 시도 때도 없이 잤다. 그리고 최대한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산책하고 와서는 뜨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충분히 이완시켰다. 몸이 늘어지는 안온한 느낌이 좋았다. 몸은 긴장과 이완을 번갈아가며 해야 하는데 내 몸은 내내 긴장상태로 살았다. 늘 바짝 긴장하며 교감신경을 자극하며 살았다. 한 번씩 이완시켜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몸의 감각에 집중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를 보고, SNS를 확인하던 습관을 아침명상으로 바꿨다.
호흡하며 몸의 변화에 집중했다. 몸의 모든 감각에 귀 기울이고, 몸의 상태를 살폈다. 어제의 찌릿한 통증과 오늘 통증의 부위 차이를 보고, 한쪽이 더 부은 건 아닌지, 상처가 잘 아물고 있는지 살폈다. 수술 부위를 세심히 살피고 상처 회복 정도를 관찰했다.
내 몸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암환자가 되고 보니 처음인 것이 많아졌다.
수술하느라 시퍼렇게 되었던 가슴의 멍이 빠져가는 과정은 신비로웠다. 상처가 아무는 정도는 시각적으로 확인이 어렵지만, 멍이 빠지는 정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몸의 자생력과 회복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방암수술 회복 안내문에서 림프절 부종이 오지 않게 팔 올리기, 어깨 돌리기 등의 스트레칭을 하루 세 번 하라고 했다. 그런데 스트레칭 동작이 너무 간단하고 쉬웠다. 수술한 다음날에도 어깨가 올라가길래 이쯤은 안 해도 되겠다고 자체 판단해 버렸다. 그러다 어깨 통증으로 고생할 수 있다는 초이샘의 엄중한 경고를 듣고서야, 그 쉽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별 것 아닌 걸 안 해서, 문제가 생기곤 한다. 별 것 아닌 걸 여태 안 하고 살았다. 힘든 일은 하면서도, 쉬운 일은 하지 않았다. 내 몸을 살피는 일 말이다.
왜 그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걸까? 아니, 왜 그 마음을 내기 어려웠던 걸까?
세상 돌아가는 일은 놓치지 않게 체크하면서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은 왜 하지 않았던 걸까?
태양광 충전
유방암 수술 후 퇴원하고 집에서 보낸 일과는 단순했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글로 풀어낼 힘은 없었다. 유일한 일과는 산책뿐이었다. 산책하면 변비도 예방되고 밤에 잠자는 데도 도움된다. 햇빛을 쪼이며 아파트 주변을 10분에서 20분 동안 정말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수술한 팔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서, 팔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걸었다. 걸음 속도가 조금 빨라졌을 땐 수술한 쪽 팔은 움직이지 않게 주머니에 넣고 걷기도 했다.
꽃샘추위라 해서 롱패딩을 입고 나갔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가 얇은 패딩으로 바꿔 입고 나온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더워서 공원 화장실에서 내복을 벗어야 할 만큼 날은 차츰 따뜻해졌다. 날이 따뜻해지는 속도에 맞춰 나의 걸음 속도도 조금씩 빨라졌다. 느리게 걷는 할아버지 속도 정도는 낼 수 있게 되었다.
걷다가 힘들면, 볕이 잘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아 있었다. 볕 쬐는 고양이처럼 햇빛을 쬐었다. 따뜻한 햇빛으로 내 몸이 소독되는 것 같았다. 동시에 태양광으로 충전되는 것 같기도 했다. 에너지가 충전 만땅으로 차오르길 바라며 햇빛을 온몸으로 맞았다.
'에너지야 차올라라, 차올라라'
< 유방암 수술 후 하루 루틴 >
오전 : 아침명상 5분--아침--어깨운동 5분--산책 20분--낮잠
오후 : 점심--어깨운동 5분--산책 20분--낮잠
저녁 : 저녁--어깨운동 5분--산책 20분(생략하기도 함)--취침명상 10분--10시 잠
에너지 바닥인 상태에서 가장 큰 힘을 쓴 날
에너지 바닥인 상태에서 가장 큰 힘을 쓴 날은 퇴원 후 1일차였다. 그 날 변기 사고가 났다.
장을 비워내지 못한 것은 수술 전날부터였다. 수술 전날부터 저녁에 먹은 것이 뱃속에 그대로 있는 듯 묵직했다. 수술가기 전 아침에 배출을 시도했으나 긴장상태여서 그랬는지 배출에 실패했다.
수술날에는 금식했으니 먹은 게 없어서 안 나오나 싶어 수술 다음날부터는 먹어서 밀어내는 전략을 썼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져 모든 일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 왔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키위를 먹고, 바나나, 요거트를 먹었는데도 응답이 없었다. 속은 부글거리는데 나올 생각을 안했다. 너무 안 움직여서 그런 것 같아 아파트 주변을 걸으며 장을 움직이게 했다. 그랬더니 드디어 신호가 왔다.
화장실 변기에 앉았는데, 4일 동안 뱃속에서 딴딴해진 것이 나올 생각을 안 했다. 힘을 주면서도 수술부위 상처에 무리가 가지 않게 힘을 조절해야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매우 딴딴한 것이 배출되었다. 그런데 그 딴딴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변기가 막혀버린 것이다.
퇴원 후 1일 차에, 수술한 쪽 팔에 힘쓰지 말라고 했는데, 변기를 뚫어야 했다. 동생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변기 막힘 사고는 난생처음이었고, 동생에게 내 변을 보게 할 수는 없었다. 유튜브에서 안내해 주는 여러 방법을 써서 우여곡절 끝에 겨우 변기를 뚫었다.
유방암 수술 후유증이 변기 막힘 사고라니!
그래서 다음 수술 땐 철저하게 변비 예방책을 세웠다. 난소 자궁 적출수술할 때는 푸룬주스, 요거트를 잔뜩 챙겨서 대비했다. 그런데 난소자궁적출 수술은 수술전 관장도 하고, 입원 기간동안 소화촉진제, 장운동 촉진제를 약으로 줘서 변비 걸릴 일이 없었다.
이에 비해 유방암 수술은 입원 기간도 짧고, 장기와 연관된 수술이 아니라서 변비에 대비한 처방을 하지 않는 듯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유방암수술과 변비는 다른 이들도 흔히 겪는 문제인 듯했다. 수술할 때 쓰는 항생제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암튼 그래서 유방암 수술 후 변비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환우 여러분! 유방암 수술 후 변비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퇴원 후 7일 차에 기타 치고 싶어졌다
퇴원 후 7일 차가 되니, 일렉기타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곡을 연주하며 둥당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어졌다.
둥둥 둥둥 둥둥 둥둥 밤이 깊었네. 빰빠빰빠빰빰빰빠
이 리듬을 떠올리자, 이제 좀 살만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 칠 마음이 다 들고.
나의 에너지를 끌어올린 건 동생이 사다준 추어탕과 족발일까? 써니가 배추와 무와 소고기를 넣고 한솥 끓여준 고깃국 덕분일까? 친구와 언니들이 제각각 한 팩씩 사다 줘 냉장고에 가득 찬 딸기 덕분일까?
수술 후 고단백 음식과 과일은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어주었다.
수술하기 전 언제부터 운동이 가능한지, 언제부터 외출이 가능한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궁금한 수술전 환우들을 위해 회복 속도를 기록해봤다.
<퇴원 후 나의 몸 회복 속도>
부분절제수술, 감시림프절생검술 시행
퇴원 후 1일 : 산책 10분
2일 : 산책 20분 2회
3일 : 드레싱 제거, 샤워 가능
5일 : 산책 20분 3회, 다리에 힘이 좀 생김
10일 : 첫 외출(교외 드라이브, 운전은 백언니)
11일 : 첫 운전, 1시간 운동 시작
12일 : 기타 레슨 재개
13일 : 외래 진료
17일 : 계단운동 시작
적절한 전환의 시점
“생명과 우주의 차원에선
아픈 것도 삶의 또 다른 과정에 해당한다.
질병은 생명의 능동적 전략이기도 하다.
아픔을 통해서만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기 때문이다. “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중에서
초기에 내가 암환자임을 받아들이게 도와준 문장이다. 질병이 삶의 또 다른 과정이고, 생명의 능동적 전략이라는 말, 아픔을 통해서만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된다는 말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삶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싶었다.
쉬고 싶었다. 너무 많은 연락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 연락이 왔다. 카톡방 여러 군데서 오는 연락은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카톡앱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스케쥴러는 꽉 차 있었다. 비어 있는 날이 없었다. 어떤 날은 퇴근 후 일정이 두 건인 날도 있었다.
이런 삶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고, 나의 생활루틴을 만들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유방암은 메시지를 주었다.
그만 하라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이제 그만 바쁘게 살라고.
적절한 시점에 알려주었다. 나를 돌보라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강제로 만들어주었다. 좋은 말로 해서 안 들을 것 같으니 무릎을 꺾어 들어앉혔다.
몸을 살피며 살라고. 몸의 언어에 귀기울이며 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