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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내음 Jul 31. 2017

23.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ABC 도착

MBC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걷기 시작. 조금 전에 있던 곳인데 집이 정말 작아 보인다. 로지 뒤편으로 보이는 산이 마차푸차레다. 포카라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렇게 맘 설레게 보이던 곳. 그러나 막상 그의 품으로 왔을 땐 그저 굴곡진 가파른 돌 산만 보일 뿐이었다. 

조금 더 올라와서 뒤돌아 보니 이제 겨우 마차푸차레의 모습이 드러난다. 내가 그 안에 있을 땐, 그 산이 얼마나 큰 지 잘 알 수 없다.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그 위용을 알 수 있다. 

파노라마를 찍고 보니 마주보고 있던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가 마치 어깨동무를 한 것처럼 나란히 보인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제일 좋은 건 파노라마 기능이다. DSLR로는 이런 웅장함을 사진 한 컷에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Canon 20D, 광각렌즈를 끼워 찍어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장면은 이 정도.

MBC에서 ABC까지 거리는 2.8km. 통상적으로 올라가는 데 3시간, 내려가는데 1시간 반을 잡는다. 3800m가 넘으니 숨 쉬며 걷는 게 너무 힘들다. 한 걸음걸음마다 심호흡 한 번씩을 한다. 내 몸이 왜 이리 말을 안 듣지 싶을 정도로 몸의 반응이 더디다. 눈에는 거침없이 가도 될만한 길이었으나 결코 눈만 믿어서는 안 된다. 자칫 서두르다 고산 증상이 생기면 오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한다. 하산하는 일이라고 쉬운 일도 아니지만 여기까지 와서 어리석게 굴다 바로 앞에 고지를 두고 가는 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ABC까지 한 시간 남았다는 바위에 새겨진 표시를 보고 다시 힘을 내 본다. 

올라 오는 중에 가장 난코스로 기억된다. 길이 험한 것도 아닌데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 한 발 떼기가 정말 힘들었던 곳. 잠깐 쉬면 바람 불어 춥고, 걸으면 숨을 못 쉬겠고, 되돌아 가고 싶은 마음과 앞으로 가야 한다는 신념이 마음 속에서 수도 없이 갈등을 일으키던 구간이다.

허깨비를 본 건 아니겠지? 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눈앞에 나타났다. 해도 살짝 넘어가고 있고, 살짝 현기증이 나기도 하고, 배터리는 얼마 없지만 기분 전환을 위해 음악을 잠시 틀어 본다. 윤도현의 사이다 같은 목소리에 기운이 난다. 일행들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 지 오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나와 보조를 맞춰 주는 라잔. 내 속도에 맞춰 걷기가 힘들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래도 의리 있게 끝까지 옆에 있어 줬다. 특별히 말은 안 했지만 정말 고마웠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 ABC에서 바라보는 마차푸차레. 결국 이 곳까지 왔구나. 좀 늦게 도착하다 보니 숙소에 우리 일행이 한꺼번에 머무를 곳이 없다. 남자분들 따로, 여자 두 명은 또 다른 숙소에 머물기로 한다. 

캠프 뒤 쪽으론 아찔한 낭떠러지다. 한번 미끄러지면 혼자 힘으로 기어 올라 오기 어려운 곳이다. 흙이 쓸려 내려가는 곳이고 눈까지 섞여 있어 장비가 필요하다. 사진에 보이진 않지만 바람도 상당히 불었다. 

결론은 가까이 가서 좋은 것 없다는 것인데, 사진 찍는 사람들은 꼭 그 끝에 서야 뭔가 할 일을 다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선다. 정작 사진은 다리에서 잘리고, 위에 산 봉우리도 잘리고, 뒤에 낭떠러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산을 알고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곳이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다. 사진 속에 인물만 기억하겠지.

올라오면서 몇 차례 마주쳤던 왼쪽의 이스라엘 친구, 물어봤더니 행위 예술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그 친구는 세계일주 하면서 가는 장소마다 저 닭 인형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오른쪽에 있는 친구는 네팔 태생이지만 미국에 산 지 오래돼서 자신의 나라를 보고 싶어서 혼자 왔다고 하더군. MBC에서 ABC로 오는 동안 힘내라고 계속 격려해 주던 사람들이다. 모두 한 곳에 있었지만 이 곳에 온 목적들은 제각각이었다. 그래도 모두 자신만의 꿈을 하나씩 성취한 기념으로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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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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