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다녀 가지만 그래도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니 최대한 사진에 담아 본다.
트레킹으로 오를 수 있는 최대 높이까지 왔다. 4200m.
11월 말이라 춥긴 하지만 아직 눈이 많이 내리는 때는 아니다. 올라오기 전에는 눈 덮인 흰 산을 그리며 올라왔지만 오는 동안 눈이 없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운이 좋았다. 베이스캠프 위쪽으로는 언제 내렸는지 이미 쌓였던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채 있었다. 히말라야 산을 등정하는 사람들 역시 여기까지 트레킹으로 온다. 그리고 등반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여기서부터 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혹시 하룻밤이라도 그 위에서 보내야 한다면 눈 속에 텐트를 치고 있을 수밖에.
정면에 보이는 산은 강가푸르나(Gongapurna 7454m), 빙하가 있지만 물 구하기도 어려운 곳이다. 트레킹 외에 빙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미리 허가증도 받아야 한다.
강가푸르나 왼쪽으로 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 안나푸르나 I 8091m, 8000m 넘는 14개 봉우리 중 하나다. 한 때 겁도 없이 저런 빙벽을 올라 등반을 해 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 했을까? 물론 지금도 어느 새로운 도시에 갈 때면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즐겨 하지만 빙벽 등반은 이젠 어려울 것 같다. 이미 여기까지 오면서도 스스로 저질체력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ABC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목적지까지 잘 왔다는 안도감, 해냈다는 뿌듯함, 뭘 기대했는지 살짝 허탈함,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등의 기분이 교차하면서 추워서 벌벌 떨면서도 주변을 맴돌고 있다.
고작 오후 5시쯤 되었는데 해가 지고 있다. 로지 옆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운치 있어 보인다. 다만 이 추운 날씨에선 보기 좋은 떡이기도 하다.
저물어 가는 해가 마차푸차레 봉우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붉은빛과 노란빛이 흰 눈에 반사되면서 보이는 절경이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보니 왼편에 뭔가 꽃과 함께 달린 것이 있다.
2011년 안나푸르나 I에 오르다 조난당하신 박영석 대장을 기리는 표식..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박 대장이 했던 말이다. 게스트 하우스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박 대장님과 같이 모셔진 분들을 위한 추모탑이 있다는 걸 나중에 하산하면서 들었다. 아쉽다. 가서 들고 갔던 위스키라도 한 잔 드리고 왔어야 했는데...
사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ABC를 왔던 건 아니다.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어린 날의 호기심이 시작이었고, 인생의 전환점에 좋은 기회가 생겨 온 것뿐이다. 막상 와서 보니 사실 아무것도 없다. 지나왔던 많은 로지 중에 하나였고, 날씨마저 쌀쌀맞은 게 '누가 오라고 그랬냐?'하는 것 같다. 인생은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는 게 아닌 것이다. 목적지를 잡는 건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방향을 잡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ABC를 목적지로 잡고 오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 그리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가 기억할 모든 것이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박 대장의 말이 자꾸 되새겨진다.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7년간의 타지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길, 여기가 내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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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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