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싫을 때.
글쓰기가 흐리다. 먹구름이 가득해서 쨍하고 생각나는 글감이 없다. 며칠 전 이것저것 글감을 저장해둔 메모장을 열어본다. 그때는 분명, 키득거리며 저장한 글감이었는데, 이건 뭐야. 난감하다. 흐린 날씨같이 구리다.
비 오는 날, 신발장을 열었을 때 기분이다. 어떤 신발을 신고 나갈지 고민이 되는 것처럼, 손에 잡히는 글이 없다. 신을 만한 신발이 없는 것처럼, 쓸만한 글이 없다. 캔버스 신발처럼 평범한 일상의 글은, 빗물이 쉽게 들어와서 짜증이 날 것 같은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비를 막겠다고 겉 감이 가죽인 신발을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초여름이 다가오는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나와 어울리지 않는 글감인 것 같다. 다른 글감으로 눈을 돌린다. 비에 젖으면 발 냄새가 진동할 것 같아서 망설여지는 슬리퍼처럼,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이 중구난방으로 써질 것 같아서, 그만둔다. 신발장을 서성거리듯, 작가의 서랍장을 서성거린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집에 들어앉는다. 비 오는 날 신을 만한 신발이 없어서, 나가지 않는다.
흐린 날씨 덕분에 글맛이 떨어지는 것 같다. 글맛을 되살릴 만한 것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평소 찾지 않던 음식이 당기는 것처럼, 잠깐 다른 분야의 글에 눈을 돌려보기도 한다. 괜스레 스트레칭도 하고, 상큼한 음악도 켠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며 기분도 바꿔본다. 날씨처럼 내 글이 흐리지 않기 위해서.
오늘 날씨같이 미완성으로 엉거주춤하게.
10분 후면, 아들 하원 차가 온다.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