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학교 안의 청소년 성소수자' 에 대해 서술할 예정이다. 글을 읽는 동안은 자신이 가진 편견과 혐오를 잠시 묻어두고 사실로써, 현실로써 받아들여주기를 희망한다. 공감이 아닌 납득만을 바랄 뿐이다.
학생 + 성소수자
우리는 지난 1학년 가정교육 시간에 청소년의 발달 특성 중 '신체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며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 라는 특성을 배웠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청소년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확립하는 시기이다. 당연히도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다.
*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성적 지향은 감정적/성적으로 끌리는 대상, 성별 정체성은 자신의 정신적 성별을 의미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소수자인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또한 가정과 학교 등의 사회에서의 인식, 낙인 탓에 자신의 정체성을 오랜 시간 부인하기도 한다. 청소년의 자연스러운 발달임을 교육하면서, 어떤 정체성은 이상한 것이라고 말하기에 더욱 복잡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책에서는 이를 "자기 부정과 수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과정의 연속" 이라 표현했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자신에 대해 대단히 오랜 시간 고민하는 것에 비해 이를 타인에게, 특히 어른에게 털어놓는 일은 드물다. 2016년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에 참여한 청소년 성소수자 200명 가운데 엄마에게는 13.5%, 아빠에게는 4.5% 만이 커밍아웃을 했다. 대부분의 권리와 책임이 그 부모나 보호자에게 위임되어 있기 때문이다.커밍아웃을 이유로 부모와의 관계 유지에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생존에 직결된 위협으로 다가온다.
또한 학생의 교육과 보호 관리가 목적인 학교에서 조차 성소수자는 안전함을 느낄 수 없다. 중고등학교에서 커밍아웃을 할 경우 학교 생활은 급격히 어려워진다.
한 연구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졌거나 그렇게 보인다는 이유로 경험한 괴롭힘에 대해' 청소년에게 질문한 결과 응답자 200명 중 47.5%가 다른 학생으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모욕적인 말을 들었고, 14.5%는 따돌림을, 4.5%는 신체적 폭력도 당했다. 이들은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다른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신을 부인하고, 혐오에 동참하고,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상처 내는 말을 내뱉는다. 이 역시 학교에서의 고통스러운 과정 중 하나이다.
성소수자는 학생이지만 교사로부터도 안전하지 않다. 21%의 학생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교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일상적 불이익을 받거나, 신체적 체벌을 받기도 했다고 응답했다. 실질적으로 그러한 교사가 적더라도 영향력은 크다. 만약 교사가 "너희는 동성애 하지 마라, 더러워", "너는 게이, 뭐 그런 건 아니지?" 와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떨까? 교실에 앉아 그 말을 듣는 청소년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모욕과 적대적인 분위기를 느낀다. 교사의 흘러가는 한마디가 성소수자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행동한다.
청소년은 학교를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방법도 있지만 자신이 성소수자라서 자발적으로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것 자체로 고통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환영받지 못할 장소라는 사실을 앎에도 정해진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만연한 혐오 표현
학생은 자신을 숨긴 채 교실에 앉아 수많은 혐오를 마주한다.
그중 가장 많이 들리는 "게이냐, 게이 같다" 등의 표현은 "장애"를 비롯해 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비속어로 자리 잡았다.
혐오 표현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들은 표현 중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표현이 교사로부터 65%, 학생으로부터 78%로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도덕적이지 않다.", "더럽다", "역겹다", "징그럽다", "죄악이다", "동성애는 치료할 수 있다", "주변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등의 비난성/혐오성 표현을 수없이 들어왔다고 응답했다.
학교에서의 혐오 표현은 대게 유머와 놀이를 가장해 쓰인다. 유머는 표현을 가볍게 만들어 역설적으로 쉽게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혐오 표현은 자신이 혐오의 당사자든 아니든 당당하게 반대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유머로 쓰인 혐오는 웃자고 한 얘기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될까 봐, 혹은 자신이 그 유머의 가운데 '광대'가 될까 두려워 쉬이 반대할 수 없다.
사람들은 본래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통의 상황에서는 사회 규범 때문어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 비하성 유머를 던지고 사회 규범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그 결과 규범이 느슨해지고 사람들은 편견을 쉽게 드러내면서 차별을 용인하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나는 적어도 학생에게 학교와 교실이 혐오가 용인되는 장소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누구나 유머라는 이름의 혐오를 내뱉지 않고, 이미 던져진 혐오를 중단시킬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한 학급에 청소년 성소수자는 몇 명 정도 있을까? 미국의 통계를 통해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는 통계 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어 자료를 인용할 수 없었다.)
22년 3월 기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는 미국 고등학생 8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험 조사에서 5명 중 1명 비율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인식하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미국보다는 정체성을 인지하기 어려운 환경이니 대략 7~8명 중에 1명이라고 가정한다. 파주를 기준으로 대략 한 학급에 30명 정도 있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같은 반 안에서 약 4명의 성소수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의 4명의 학생은 앞서 말한 혐오를 매일, 매번 견뎌온 것이다. 현실을 마주할수록 숨을 수밖에 없었을 이들은 그렇게 어디에나 존재하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도록 자라 간다.
불쌍한 처지의 성소수자를 동정하고 도와야 한다는 그런 말이 아니다. 인간은 어떠한 조건으로도 타인에게 차별받고 멸시받아서는 안되며, 설령 그 사람이 당신과 다르다고 해서,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욕을 하고 조롱해도 되는 권리가 당신에게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싫어할 수 있으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혐오는 합리나 논리만으로 설명되거나 수용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는 받아들이지 않되 그 견해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이 표출하지 않은 혐오는 서서히 옅어져 숨을 필요가 없어진 성소수자를 민초파나 하와이안 피자 호불호처럼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성소수자는 익숙하지 않은 대상이 아닌 여러 취향, 지향 중 나와 다른 하나의 특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 하나를 적는다고 해서 당장 교실이 성소수자에게 안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학교라는 장소가 모든 혐오와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길 바란다. 자신에 대해 떳떳하고 솔직할 수 없게 만드는 공간이 사라지길 바란다. 또한, 우리 학교 곳곳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성소수자에게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이 학교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