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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May 05. 2020

신선식품 온라인 유통의 진정한 가치

플랫폼 MD의 역할


[MD에세이]이라는 글묶음을 소개해드립니다. 

MD라는 직업을 가진 자가 바라보는 소매업, 이커머스, 플랫폼.

그리고 식재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모아놓으려고 합니다. 

2002년부터 식품 MD의 業을 영위해왔지만 실상은 業에 대한 규정조차 명확하지 않아 늘 고민이 많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여러분들과의 토론을 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아이들 신발을 보면 바닥이 온통 흙투성이다. 지저분해 보이지만 이건 좋은 신호다. 봄은 이렇게 스미듯이 온다. 산업의 변화 역시 서서히 온다. 


1996년 한국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가 문을 연지 무려 25년이 지났다. 거래 품목은 점차 분화, 발전했고 20여 년이 지나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신선식품 카테고리로 유의미한 확장을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고기며 채소 등속을 구매한다는 개념은 이제 제법 자연스럽다. 하지만 극적인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변화는 바로 역동적인 참여자들로부터 시작한다. 흙투성이 신발이 봄 소식을 전했다면, 시장의 변화를 알린 이들은 평범한 농부와 어부이며, 젊은 사업가들이다. 


잠깐,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유통업의 역사를 장식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다. 그들의 이야기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32년 박흥식이 조선 경성에 화신백화점을 창업한 뒤 반 세기 이상 유통의 왕은 백화점이었다. 하지만 1993년 이마트가 할인점 왕국의 시작을 알리며 마트의 시대가 이어진다. 한 세기 간 이어진 이들의 아성을 무너뜨린 강력한 경쟁자는 유통업이 아닌 IT업계에서 나왔다. 1996년 인터파크 창업 이후 옥션(1998년), G마켓(2000년)이 뒤를 이었으며 11번가(2008년)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2017년 오픈마켓 4사(11번가, 이베이코리아, 쿠팡, 인터파크)의 거래액은 대형마트 3사를 추월하고 만다. 

이렇게 최근 온라인 시장에서 대형 유통사는 힘겨워 보였다. 오픈마켓, 소셜커머스를 당해내기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작은 암초가 나타난다. 생산/수집/중개/분산의 유통 과정에 산적한 다양한 난제들. 신선식품에서 드디어 역전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오픈마켓의 경우 신선식품의 거래액 비중이 2.5%에 불과하지만, 대형 마트는 25%의 높은 비중을 자랑한다. 신선식품 시장은 대형 유통사에게 유리한 싸움터이다. 한동안 신선식품을 잘 다루려면 리테일 비즈니스 기반의 ‘당일 배송 장보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명제가 정설로 자리잡았다. 플랫폼 기업들 조차 장보기 서비스를 시도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장보기 서비스가 신선식품의 극적인 변화를 이끄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을까?

오프라인 주도의 리테일 비즈니스가 온라인에서도 패권을 장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남지만, 아쉽게도 싸움 구경은 여기까지이다. 이 시장에서는 싸움 실력말고, 다른 소재로도 겨뤄볼만 하다.


바야흐로 봄이다. 싸움은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극에 출연하는 이들은 스타트업, 플랫폼이며 평범한 농부와 어부이고 소비자들도 나온다. 


1막 도입부의 주연은 봄 꽃처럼 신선한 젊은 스타트업이다. ‘헬로네이처’, ‘마켓컬리’와 같은 잘 알려진 이들 외에도 다양한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들이 신선식품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꽤 많이 알려졌고, M&A이슈도 뜨겁다.


2막의 주연은 플랫폼, 마켓 플레이스이다. 2017년, 1년간 11번가의 신선식품 카테고리를 무대로 약 7천개의 셀러가 22만개의 상품을 무대에 올렸다. 할인점의 경우 공급업체가 4~500개, 상품은 5,000개 정도임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있다. MD의 역할도 다르다. 오픈마켓에서 MD의 역할은 선별/정제/배치에 중심을 둔 큐레이션 활동이다. 직매입 기반으로 엄격하게 원/매가를 통제하는 리테일 MD의 활동과 분명히 다르다. 생산자 또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대형 유통사의 진입장벽은 매우 높고 MD의 의도가 가장 중요한 반면 오픈마켓은 진입이 자유롭고 판매활동 역시 판매자의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 무려 7천개의 셀러다. 작지만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마트 쇼핑에서 경험하는 제한적인 선택의 다양성에 비해 완전히 다른 차별성을 준다.


절정으로 치닫는 3막의 주연은 농부와 어부이며, 골목의 과일가게, 정육점이다. 귀농/귀촌으로 일군 농장들도 빼놓을 수 없고 대를 이어 농업을 선택한 젊은이들도 등장한다.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최종 상품의 생산자들이다. 이렇게 작지만 다양한 출연진이 등장한다는 점이 신선식품의 매력이다.

불과 10년 전 까지만 해도 이들에게 마트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자본 규모가 큰 수집상, 중개상에 의존하거나 농협, 수협에 거의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열린 마켓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이들에게 단비와 같다. 물론 플랫폼 활용 방법을 모르거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또 다른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플랫폼 MD들의 직무에는 이러한 Pain Point를 해소하기 위한 셀러 기획을 중요하게 포함시키고 있다. MD는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문턱을 낮추되, 선별/정제/배치에 공을 들인다.


한편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은 오프라인 유통사의 경쟁자가 아니다. 기존 시장을 파괴하며 등장한 새로운 경쟁자로 보이지만, 이들은 조만간 시장 전체를 아우르며 모든 참여자들에게 젖과 꿀을 제공하는 목장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신선식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참여자는 유통경로에서 만들어진 수익에서 오히려 소외된 생산자들, 바로 농부와 어부들이다. 이들의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 산업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 그 이상을 창출할 것이다.


물론, 당분간은 치열한 접전이 계속될 것이다. 승패를 가리는 기존 방식은 꽤 오래 동안 작동할 것이다. 

커머스 플랫폼의 MD로서 우리는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묵묵히 무대를 준비하고 고객맞이를 준비할 것이다. 이야기를 읽어줄 독자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오래도록 곁을 지켜온 믿음직한 마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할 일이 아직 많다.



* 이 글은 2018년 5월, 디지털타임스에 기고한 "주목받는 온라인 신선식품 플랫폼"의 초고 원문임을 밝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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