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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May 05. 2020

마트 밖은 위험해

온라인에서의 신선식품 구입을 망설이는 분들께 드리는 글


[MD에세이]이라는 글묶음을 소개해드립니다. 

MD라는 직업을 가진 자가 바라보는 소매업, 이커머스, 플랫폼.

그리고 식재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모아놓으려고 합니다. 

2002년부터 식품 MD의 業을 영위해왔지만 실상은 業에 대한 규정조차 명확하지 않아 늘 고민이 많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여러분들과의 토론을 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할인점(Discount Store)’이라는 새로운 소매점 업태가 생겨났다. 1962년 아칸소주의 작은 마을에서 개장하여 꾸준히 사세를 확장한 월마트는 지금도 여전히 전세계 ‘마트’의 왕이다. 우리에게 월마트에 붙은 ‘마트’라는 이름은 상당히 친숙하다. 우리가 마트라고 부르는 소매점은 실은 할인점이지만, 그 둘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마트라는 이름을 유포한 것이 월마트라면 우리나라에서 ‘마트’라는 이름을 고유명사로 만드는데 기여한 이들은 신세계 그룹이다. 1993년, 이마트 1호점(창동점)이 문을 열면서 우리에게도 마트(소비)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대형 마트는 전국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동네마다 요지를 차지한 대형마트는 400여 개에 달한다. 이들의 중소형 매장인 SSM도 1300여 개에 달한다. 두메산골이 아니라면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마트 또는 SSM 매장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타향에 가더라도 이마트를 발견하면 왠지 안도감이나 친숙함을 느끼는 게 나만의 일은 아닐 테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샘 월튼이 월마트를 창업하던 시기 우리나라의 동네 곳곳엔 근대화 연쇄점이나 새마을슈퍼가 있었다. 30평 이내의 작은 규모였지만 동네 시장과 더불어 중요한 식료품 공급처였다. 어린 시절 나에게 시장의 골목길과 좌판들이 기억으로 남아있듯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마트의 시식코너, 쇼핑카트, 벽면 쇼케이스에 가지런히 진열된 상품들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불과 한 세대, 30년의 시간 동안 소매업의 발전은 전광석화와 같아서 동네 연쇄점 혹은 슈퍼는 대기업의 할인점(그리고 SSM)으로 거의 완벽하게 대체되었다. 그리하여 요즘 우리는 식료품의 대부분을 마트에서 구입한다. ‘마트 간다’는 말은 ‘장 보러 간다’, ‘시장 간다’와 같은 말이 되었다. 

마트에만 가면 구하지 못하는 식재료가 거의 없다. 대형마트의 식품매장에는 대략 15,000~20,000개의 SKU가 진열되어 있다. 일상 생활에서 일만 오천 개의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수요가 충족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곳이 바로 마트이다. 그러니 마트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대형 유통사가 완벽하게 콘트롤하고 있는 마트의 식재료들은 품질 면에서 안전하게 느껴질뿐더러 가격도 매우 저렴하게 보였다. 마트가 아닌 곳의 식재료는 믿고 살 수 없다는 부정적 인식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원산지, 성분 등을 꼼꼼히 따질 수 있는 마트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넓고 쾌적하며, 밝은 마트 매장과 비견되는 어둡고 칙칙한 재래시장, 비좁은 진열대에 상품 포장지에 먼지까지 쌓여 있는 동네 슈퍼를 가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위생에 대한 관심이 지극한 현대사회에서 위험한 일을 감행하기에 먹거리는 내밀하며 예민한 품목이다. 그래서 마트가 아닌 곳에서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은 뭔가 위험한 일처럼 느껴진다.

1993년 마트 1호가 문을 열고, 뒤를 이어 해일처럼 전국을 휩쓴 마트의 시대는 21세기의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주춤거리게 된다. 대형마트가 일상 생활을 완전히 잠식한 것처럼 보였지만, 오래잖아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지루해졌다. 60년대에 대형마트의 시초를 연 월마트는 21세기에 들어서며 전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그들 역시 우리나라의 대형마트와 비슷한 시기에 성장을 멈추고 만다.


이제 마트가 아닌 곳에서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은 뭔가 특별한 일처럼 느껴진다. 마트 밖은 위험할까? 의문을 갖는 것, 바로 모험의 시작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스스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는 것, 먹는 것에 대해 곰곰히 따져보니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는 곳도 아파트다. 의식주를 보수적으로 선택하면서 진보적이라고? 적어도 일상 생활에서는 지극히 보수적이며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다른 성향임에 틀림없다.


지난 봄, 아내가 토마토를 주문했는데 일주일이 다 되도록 도착하지 않았다며 푸념을 했다. 

어디에 주문했길래? 

부산 대저의 유명한 농장에서 주문했단다.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수확을 못했으니 기다려달라는 문자가 왔다는 내용이었다. 

엄청 맛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모습에 덩달아 식욕이 돌았다. 

짭짤이 토마토라고도 불리는 대저의 토마토는 짠맛과 단맛, 신맛이 묘하게 조화로운 음식이다. ‘단짠단짠’에 산도가 어우러지니 한 번 맛을 보면 오~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요새는 때가 되면(3~4월) 마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흔하게 보게 되는 것이지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토마토였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값은 일반 토마토에 비해 3배 이상 비싸다. 오직 부산 대저에서 생산되며, 짭짤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진짜 대저짭짤이는 소량에 불과하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토마토를, 잘 알지도 못하는 농장에 입금 먼저 해놓고 기다리고 있단다.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 소문만 믿고서. 

얼마 후 미지의 농장으로부터 도착한 문제의 토마토는 한 박스에 5kg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는데, 두 아이까지 합세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웠다. 그건 정말 맛있었다. 1년에 한 달, 또는 두 달만 먹을 수 있는 것이니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참고로 우리 가족이 한 달에 소비하는 쌀의 양은 10kg이다.)

마트에 진열된, 역시 어느 농장에서 재배되었을 대저토마토를 몇 번 마주쳤지만 아내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쳤다. 가격표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 

내년에 **농장에 주문할 토마토인걸.


나는 꽤 오랜 기간 식품소매유통에 관련한 직업(신선식품 MD)을 갖고 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무려 18년이다. 긴 시간만큼 충분할지는 모르겠지만 신선식품의 매입과 판매의 과정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경험을 갖게 되었다. 좋은 상품을 싸게 사서, 많이 판다는 박리다매의 원칙에 따라 매입 업무를 했다. 고객이 더 오랜 시간 매장에 체류해서, 더 많이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고객 동선과 진열의 연출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새로운 상품을 찾아내거나 아예 새롭게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마트’의 내부자라고 불러도 좋다. 


내부자의 시각으로 볼 때, 마트 밖은 위험하다. 아니 위험하게 보이도록 설계했다. 

물론 “싸다”라는 대명제가 최우선이었다. 최저가라는 가격정책을 완전하게 운영하기 위해 매우 정밀한 관리가 이루어졌으며,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최저가 울타리 안에 고객들이 열광적으로 모여들면서 또 다른 이중 삼중의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식품에서는 품질과 안전성이 가장 높은 울타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MD에 의해 전국에서 선별된 제조/공급사가 제공하는 상품들로 선택권을 좁히게 되었다. 

안전하며 보수적인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이익으로 돌아간 측면도 많다. 유통의 본질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해소해주는 한편 선택의 어려움을 완화시키는데 있다는 이론이 현실에도 작용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이 가장 큰 고민으로 남았다. 나와 동료들에 의해 선별된 상품들이 과연 제대로 된 선택인가, 오히려 선택의 제한을 초래하지는 않았는가? 

15,000개 이상의 sku를 운영하고 있지만, 소수의 공급사들이 제공한 상품들로 한정된다. 오프라인 대형마트 신선식품 카테고리의 경우 최대 500여 개의 공급사가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유통, 제조산업이 대기업에 의해 점유된 지 오래지만 농식품 분야의 작은 기업들은 최근 오히려 더 많이, 더 크게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판로도 활짝 열려있어서, 오픈마켓에 등록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셀러들은 신선식품 카테고리에서만 봐도 2만 여 개가 넘는다. 

오프라인 대형마트과 관련된 500여 개의 공급사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2만 여 개의 셀러

늘 산업 현장에 눈을 떼지 못하는 내부자의 입장에서도 그 간극은 상당히 크게 보인다. 선택권을 오히려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간극의 규모가 점점 벌어지면서 더욱 큰 고민이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질문해본다. 마트 밖은 정말 위험할까?

대형마트의 시대는 이제 거의 끝이 보이고 있다. 연면적 2만 평이 넘는 초대형 매장에도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산업은 성장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 또는 우리의 취향이다. 

이제 우리 개인들이 가진 개별적인 취향은 한 그릇에 담을 만큼 작지 않으며, 비슷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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