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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May 05. 2020

꼬막 말고, 중림시장 꼬막

식품MD가 다루는 것은 [먹고 싶다는 욕망]

[MD에세이]이라는 글묶음을 소개해드립니다. 

MD라는 직업을 가진 자가 바라보는 소매업, 이커머스, 플랫폼.

그리고 식재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모아놓으려고 합니다. 

2002년부터 식품 MD의 業을 영위해왔지만 실상은 業에 대한 규정조차 명확하지 않아 늘 고민이 많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여러분들과의 토론을 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1892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인 서울 약현성당이 위치한 중림동에서 만난 꼬막의 이야기이다. 전라남도 벌교가 고향인 꼬막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많은 과정 중 하나이지만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서울역과 중림동, 만리동은 조선 왕조 600년 도읍인 서울 한양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며 교차로이기도 했다.

현재의 중림동은 조선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 중 하나였던 칠패 시장이 있던 곳이며, 아직도 새벽에는 수산물 시장이 들어서는 곳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전신이 바로 이곳이었다. 중림동에서 마포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만리재는 1960년대 영화 마부를 통해 그려진 무대이기도 하거니와 염리동 소금길과 바로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또한 서소문 형장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들의 시체가 버려지는 시구문으로도 불리던 서소문 바깥이다.


아는 이 많지 않지만 서울역, (구)종로학원, 한국경제신문사 등이 즐비한 도심의 오래된 동네에서는 새벽녘에 잠깐 어시장이 들어선다. 140년이 넘은 조선시대에 들어선 이곳 중림동 어시장을 국내 최초의 어시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초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기억을 넘어선 오랜 세월, 시장이 연속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에게는 기억을 넘어 어릿한 추억이 되어버린, 비릿한 냄새가 버무려진 음식으로만 가끔 간신히 떠올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음식은 바로 꼬막이다. 간장양념을 살짝 올린 반껍질 꼬막. 어머니는 그 꼬막을 찬바람 드센 새벽에, 기어이 중림동까지 걸어가서 사오셨다. 그것을 살짝 데친 후 껍질을 까고, 꼬막살 하나하나 일일이 간장양념을 올려야 완성되는 음식이다. 그걸 우리 삼남매는 등교시간이 턱 밑에 쫓아온 어느 바쁜 아침 밥상에서 만났겠지만, 허둥지둥하는 와중에도 참으로 맛나게 까먹고 뛰어나갔을 테다. 그 때의 꼬막은 이제 찬바람이 불어오다 못해 함박눈이 될 것이라는 겨울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새벽 장보기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의식은 일상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서, 꼬막 반찬 역시 자주 접하는 반찬은 아니었다. 나는 유독 간장양념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비릿하면서도 요상하게 달큰한 꼬막을 좋아해서, 꽤나 자주 꼬막 반찬 타령을 했었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그게 얼마나 귀찮은지 알아? 네가 해먹어” 정도의 답변으로 퇴짜를 놓곤 하셨다. 그렇게 겨울의 초입이나 중턱 즈음 감질나게 조금 먹던 꼬막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어린 날이 다 지나고서도 한참이나 지나 거의 서른 즈음이 되어서이다.


나름 대기업 유통사에 취직도 해서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꼬막 정도는 원 없이 먹어도 될 수준이었는데, 왜 바로 그 꼬막이 먹고 싶었는지. 어머니를 졸랐더랬다. 역시나 귀찮으니 안하겠노라 하시던 어머니가 새벽에 같이 가겠느냐 물으셨다. 평소 같으면 휴일의 새벽을 숙면 외의 기타 활동으로는 사양하던 내가 왠일인지 그러겠노라 했고, 다음날 새벽, 나는 처음으로 중림동의 새벽 어시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드럼통에 불붙어 타고 있는 장작이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비린 것들의 냄새란 지독히도 원초적인 것이어서 동장군이 몰아붙이는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고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 이런 곳에 좌판 가득 골목시장이 있었구나. 이 근처 동네에서 거의 삼 십 년을 살았는데 처음 본 광경이었으니, 생경한 호기심이 뇌리를 꾸욱 진하게 눌러놨을 것이다. 어제 일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두루뭉실 기억력의 소유자인 나에게 이 정도의 기억으로 깊이 남아있으니 아마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꼬막 사러 오셨으면서도 지긋하게 나이 들어 꼬막 주름보다 더 늙어버린 상인들이 좌판에 깔아놓은 오징어며, 동태 같은 것에 말을 걸고 들어올려 살펴보기도 하셨다. 그렇게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어머니는 검정 비닐 봉투에 꼬막 한 바가지를 담아들고 휘적휘적 걸어가셨고, 내가 들겠다고 봉투에 손을 내미니, 남자 꼬투리가 이런 거 들고 다니면 못쓴다며 손을 바꿔 봉지를 들고 마저 걸음을 이어가셨다. (꼬투리라니, 이 말씀은 ‘넌 아직 내 어린 아들이다.’ 이 소리다.) 그나저나 꼬막을 어떻게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맛있게 먹었겠지. 거의 처음으로 어머니와 장보는 기타 활동을 했으니, 먹자 마자 숙면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골목 시장 꿈을 꾸었겠지.


그날 먹은 꼬막은 아마도 새꼬막이었을게다. 꼬막이면 꼬막이지 뭔 소린가 싶겠지만. 식품 MD로서 새꼬막과 참꼬막 정도는 구분해서 말해야겠다 싶어서 꺼낸 말이다. 새꼬막은 대규모 양식을 하고, 참꼬막은 자연산인데, 자연산의 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대놓고 여긴 내 밭이다 하고 키우는 것을 양식이라 하고, 종패를 뿌려놓은 뒤 뻘이 다 키워놓으면 캐가는 정도의 수고만 하는 것을 자연산으로 보면 된다. 아, 여기엔 어폐가 있다. 캐가는 정도의 수고라니! 꼬막 캐는 건 정말 죽을 맛의 중노동이다. 육상의 포유동물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된 장소가 아니다. 갯벌이란 건 오직 갯 것들에게만 허용된 공간이며, 널판지 한 짝에 의지해, 네 발, 아니 두 손 두 발을 다 써서도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서 꼬막을 캐내는 것은 그야 말로 중노동인 것이다.


2008년으로 기억한다. 각 산지의 굴을 상품화하느라 서해와 남해의 뻘을 돌아다닐 때다. 그 뻘들이 굴만 품었겠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맛난 해산물은 모두 뻘이 키운 것이다. 뻘에서 난 진짜 꼬막은 어떤 맛일까 궁금하여 보성 벌교에 유명하다는 꼬막 정식집을 찾아갔다. 그야말로 꼬막이 지천이로구나 싶은 밥상을 마주하고서, 비빔밥에 전에 무침에 찌개에 널린 꼬막을 잔뜩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도 난 중림시장의 꼬막을 떠올렸다. 몇 배나 비싼 참꼬막의 살을 가득 오물거리면서도 궁핍한 골목시장의 양식 새꼬막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잊지 않고 간헐적 기억으로 살아나는 첫사랑과 같은 심히 감각적인 행위이다. 그 감각은 냄새와 맛, 흐릿한 시각, 혹은 어렴풋한 소리일 수도 있는데, 나의 꼬막은 오 할이 비릿한 냄새이고 삼 할은 짭짤한 간장 맛이다. 이 할은 촉각인데,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촉각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제는 직업정신을 발휘할 때다. ‘감각’이라는 단어에 주목해보자.

그렇다. 나는 식품MD가 감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품MD는 식품, 식재료를 상품화하거나 마케팅하는 직무 전반을 다룬다. 그것이 일반적인 정의이다.

하지만 나는 식품MD가 다루는 것은 ‘먹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상품은 감각과 욕망의 집합체이며, 소비와 구매 행위 역시 욕망의 해소에 닿아있지만, 음식만큼 원초적 감각이 총동원되는 상품은 없다. 그러므로 식품MD는 감각적으로 욕망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싶다는 욕망’을 다루는 식품 MD라면, 짭쪼름한 꼬막을 100g당 1,000원의 팩에 담아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각 디자인 장치와 스토리를 통해 전시 또는 진열할 것이다. 온라인 또는 모바일에서 100g당 1,000원이라는 슈퍼마켓 식의 판매 방식으로 꼬막을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에 가깝다. 온라인(모바일)에서 꼬막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보면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들은 대담하기까지 하다. 눈으로 보거나,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지도 않고, 대담하게 도전한다.


꼬막은 양식 새꼬막의 경우에도 최저가와 빠른 배송을 무기로 대량 판매할 만큼 대량 생산되는 품목도 아니며, 사시 사철 반찬으로 올라오는 흔한 식재료도 아니기 때문에 구매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방아쇠(Trigger)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구점을 정확하게 타격하여 ‘오늘 꼬막 한 접시 먹어볼까?’라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가격이나 배송 서비스보다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발생한 식욕이 구매결정의 우선 순위로 올라오게 되는 품목이다. 나는 꼬막의 Trigger가 감수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매 행위로 연결시킨 후에도 MD가 관리해야 하는 영역은 꼬막 껍질이 섭취 후 버려지는 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꼬막이라는 상품을 어느 정도의 중량으로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포장하며, 가격과 마진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MD의 상품화 기획에 관한 기술적 접근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러한 관리영역만이 전부는 아니다. 감각을 다루는 측면에서 큐레이터의 관점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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