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문장은 바위처럼 단단하다. 어떤 문장에 이르러서는 분명히 밤새도록 몰두했을 한 글자 한 글자라는 생각이 들어 이해가 닿지 않았으면서도 쉽게 설득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소용스럽지 못한' (p33. 그러나 용기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전하는 칭찬은 소용스럽지 못하다)이나,
'비밀한' (p87. 언젠가부터 비밀 기지를 가지지 않게 됐다. 따로 '비밀한' 시간을 보낼 이유와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과 같은, 시인이 만들어냈을 것이 틀림없는 단어들에 자꾸 시선을 주게 된다. '나라면 어떤 문장에 이런 단어를 만들어 넣을 수 있을까?' 하면서 궁리하게 된다. 나는 물론 시인이라거나, 소설가이거나 심지어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자는 아니라서 "작은 재능은 신의 가장 큰 저주"라는 문장에 대해, 누군가에게 몹쓸 것을 들킨 기분, 불쾌한 문장이라고 선을 그어주는 시인 덕분에, 나의 그러한 궁리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듯한 안도를 하게 된다. 그렇다. 언어가, 문장이, 글이 모두의 것이듯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옳음'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문장으로 꾹꾹 눌러서 써본다.
ps.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저자의 일상에 다가갈수록 문장과는 대조적인 헐렁하고 순진함을 발견한다. 이걸 이른바 '겉바속촉'이라고 하던가.
뭔가 헐렁한 일상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속으로 내뱉는 말들은 '에헤이, 이렇게 헐렁하셔서야...' 라든지 '거참, 이렇게 물렁하시면 세상 살기 힘든데...'
그리하여 책의 말미로 넘어가며, '어쩌면 나의 일상은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단단하게, 꽁꽁 싸매고 살 필요가 있으려나...' 라고 뭔가 녹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건 내가 너무 물렁해서 일까? 이렇게 소소한 일상들로만 가득한 작은 책에 설득당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