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아내가 핀잔을 준다. 사실 나도 당황스럽기는 매 한 가지다. 아이들의 질문은 허를 찌를 때가 많아서 몇 년 전에는 아빠 직업이 뭐냐는 지극히 단순한 물음에도 깔끔하게 답을 주지 못해 쩔쩔맨 적이 있다. 내 직업, 아니 직무는 MD(머천다이저)이다. 이 말을 여덟 살 아이에게 어떻게 이해시킬지 한참 고민했지만 결국 아빠 직업은 '물건을 파는 사람'으로 정리되었다.
(사전적 해석인 '상품기획자'는 '기획'을 설명하는데서 막혔다. 사실 나도 기획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또, 갑자기 특기가 뭐냐니...
나는 진지한 일을 하찮다는 듯이, 하거나 말할 수 있는 쿨하거나 힙한 사람은 전혀 아니라서 이런 질문에도 곧바로 진지 모드에 진입하고 만다.
'내 특기가 뭐지?'하고 끙끙 싸매 본다. 물론 그런 건 없다. 딱히 잘하는 게 없는 것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등장하는 아저씨들은 아빠의 특기를 칵테일 쇼(폭탄주 말기)로 승화시키는 신기를 보인다. 그 어려운 일을 해학으로 극복하다니. 그야말로 특기가 아닐 수 없다.
'잘하는 일'을 의미하는 특기를 '늘 하는 일'로 바꿔치기해보려는 시도쯤은 간단한 핀잔 한마디로 무산된다.
"특기에 독서가 뭐야? 선비야? 여기가 조선이냐고? 응?"
대답이 될 리가 있나.
'지금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마음이 가는 곳이 어디였는지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왜 안 했나 싶다.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왜 없겠는가. 멋지게 악기 하나쯤 다뤄보고 싶었고, 간단한 스케치 정도는 슥삭슥삭 그려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해봤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럼 엄마 특기는 뭐야?" 질문은 이어진다. 다행히 아내의 특기는 여러 가지다. 아내는 집에서 '고침이'로 불리고 아빠는 집에서 '망침이'로 불리는 집이 우리 집이다. 엄마는 손으로 하는 건 뭐든 뚝딱뚝딱해낸다. 다행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생각해보면 나의 특기는 아내에게 묻어가는 일일 수도 있겠다. (^^)
아이들이 손으로 뭐든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해줘야겠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마음 가는 곳에 시간과 정성을 조금이라도 부어줘야겠다.
특기가 뭐냐는 단순한 질문에 진지 모드로 여기까지 왔으니, 이 즈음되었으면 해학과 여유도 가져보자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의 유명한 선비들은 해학을 즐겼고, 풍류에도 능했단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쏟지 못하고, 해야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나의 시간들, 그 지리멸렬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삶이 그리 재미있는 건 아니지만, 뭐라도 해볼까 싶은 소망을 가질 수 있으니 여전히 살아갈만하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괜찮아. 뭐 어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