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코시국이라 조심스럽지만, 아무도 없는 틈에 마스크를 살짝 내린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셔 본다. 입이 아니라 코로 마셔야 한다. 습기와 함께 약간의 흙냄새가 섞여 다정한 느낌을 주는 상쾌한 숨이다. 바라던 바다.
잠시 멈춰서 음미하듯 숨을 들이마셔본다.
동네 산책엔 이런 다정함이 있어 좋다.
토요일의 아침 산책은사람보다 새의 소리가 많아서 좋다. 걷다 보면 어르신들의 오전 일과를 보게 된다. 천천히 걷거나, 두 분이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거나, 집 앞 골목에서 재활용 박스 뭉치를 정리하고 있거나.
토요일의 아침에 최소한의 움직임과, 최소한의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노인들이다. 오후에, 혹은 저녁에 젊은이들이, 혹은 아이들이 내는 소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주의 깊게 들어야 하고, 다급하거나 시한이 있는 소리로 짐작되어 나도 모르게 대답을 준비하곤 한다.
평일 오후와 저녁시간에 주로 활동하는 나에게 휴일 아침의 산책은 느긋한 움직임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물론, 사람보다 새의 소리가 더 많은 것이 가장 좋지만, 나이 들어감을 두려워하는 마흔 중반의 구겨진 마음을 펴주는 것 같아 더 좋다. 이번 달 흰머리 염색은 조금 미뤄도 좋지 않을까. 하고 마음대로 생각해본다.
아주 약간의 쾌청함과, 아주 약간의 다정함. 최소한의 움직임이 주는 느긋함. 더불어 지구에 인간 외에도 생명체가 있음을 알려주는 발랄한 소리.아! 안도감도 있었지.
동네 산책은 돌아와 쉬면서도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다. 그 여운은 순해서 좋다.
#새 순 ; 봄날, 비 온 뒤
글은 동네 산책 얘기지만, 사진은 숲에서 찍어 곁들입니다. 비자림, 그 오래된 숲에 들어가 흐릿한 어딘가를 더듬듯 걷다 보면 팽팽하던 신경이 누그러지게 마련입니다. 몽환을 즐기며 천천히 걷다 보면어느새 출구 표지판이 나타나 약간의 아쉬운 느낌을 받게 되죠. 아쉬움에 뒤를 슬쩍슬쩍 곁눈질하면서 걷다가 출구에 당도하는 순간, 새순을 돋워내는 어린 나무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래된 숲, 천 년을 살았다는 비자나무를 돌아 나왔는데, 길의 끝에서 더 오래 서 있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