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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Mar 30. 2022

몸치

'수영을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만 쓰면 너무 부족 표현이 되고 만다. 다시 쓴다.

'운동을 시작했다. 거의 생애 처음으로'


이 말을 일주일 전부터 하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시작하자마자 하고 싶었지만 조금 기다렸다. 적어도 일주일은 지나야, 적어도 일주일은 꾸준히 해야 뭔가를 '한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신중한 생각을 (이번만큼은)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경솔하게 3개월치 이용권을 끊곤 한다. 10% 할인, 혹은 무려 1개월 무료라는 엄청난 혜택을 주는 번들 프로모션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번들은 역시 효과적이야.. 하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구매 영수증을 주머니에 대충 꽂아 넣고 나온다.

헬스, 필라테스, 테니스 등등. 그 많은 운동들 중에 이번에야 말로 하는 심정으로 수영을 택한 것은 무릎 때문이었다.


내 무릎의 연골(반월판이라고 했던가...)의 일부가 파열되었기 때문이다. 무릎 통증의 원인을 의사의 진단으로 알게 된 것이 무려 5년 전이고, 통증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무려 5년이나 고민(실은 아주 가끔 생각나는 정도지만)만 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나와 운동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은 간극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이'라는 표현은 요조 작가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가져왔다. 인용을 위한 페이지 등 정보는 적지 않는다. 읽어보시라. 나로서는 다소 생경한 문장이지만, 유쾌하면서도 뭔가 예민한 사람들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다. 작가는 스스로 '나도 잠깐씩은 영특하고 웃긴 것 같다'라고 표현했지만, 잠깐보다는 꽤 자주 나온다. 그런 표현.


운동에 대해 쓰면서 이렇게 옆길로 새는 것만 봐도 나와 운동 사이에는 불화에 가까운 응어리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늘도 눈뜨자마자(사실은 꽤나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수영장에 가서, 목표량(무려 10바퀴)을 채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탈의실에 갔더니, 아빠와 아이(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아기)가 오손도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화를 운운하며, 죽을똥살똥 하는 기분으로 간신히 와서, 목표량을 채우고서야 홀가분하게 나온 아저씨를 말똥말똥 바라보며,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기 상어 노래, 수영장에 딱 어울리는구먼. 하는 생각을 하며 싱긋 웃어줬다. 싱긋하면서 아마도 윙크를 했나 보다. 아이 윙크를 해줬다. 아이는 두 손을 사용하율동도 하고,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몸을 쓰는 건 이런 거구나. 새삼 그런 생각을 했다.

 

운동과 나 사이에는 아직 친해질 만큼의 시간이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건 무뚝뚝한 나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싱긋 웃어줄 정도의 여유만 가진다면 하루 중 아주 잠깐은 곁을 내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운동이라는 단어를 나와의 '사이'로 연결하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이어진다. 그러다 문득,

'운동과 나 사이'라고만 하면 너무 좁은 표현이 된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사실은 '몸과 나 사이'라는 표현이 훨씬 적절한 표현이다. 나는 운동을 포함하여 '몸을 쓰는 일'에 너무 인색했다. 심지어 윙크를 한다던지, 눈썹을 사용하여 웃거나 운다든지, 성대를 사용하여 노래를 부른다던지, 손짓 발짓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던지.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아이들을 안아주거나 뽀뽀를 해준 게 언제였더라...


어쩌면, 몸치(몸으로 하는 건 거의 대부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아마도)인 내가 내 몸(뱃살과 빈약한 근육)의 사용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운동 역시 그것 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덧붙여 생각했다. 몸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을 조금은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 몸뚱아리, 다 쓰고 가겠어. 라고 다짐해본다.


#비자림

아름다운 숲으로 산책 가는 것도 몸을 쓰는 일이죠. 계절마저 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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