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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Feb 03. 2022

책; 빈틈의 온기

윤고은, <빈틈의 온기;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 흐름출판, 2021.05.20


천천히 읽어야지, 오늘은 여유 있는 연휴잖아. 
긴장이 조금 풀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무장해제가 되기는 오랜만이다.


사실 이번 리뷰는 리뷰라기보다는 책에 대한 기억을 꺼내보는 일이다. 기억 속에서 '나'는 서로 다른 '나'로 등장한다. (작가는 무려 아홉의 자아를 등장시킨다)

 

1번의 '나'

윤고은 작가의 소설집 <1인용 식탁>을 읽던 때를 떠올린다. 아! '때'라기 보단 '장면'이라는 단어가 적절하겠다. 볼륨을 줄여서 속삭이듯 들리는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 속에서 나는 책을 읽고, 어머니는 엷은 잠에 들어 있던 장면.

북한산 도선사, 5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도선사에서 가장 큰 2층 건물(이 건물은 '호국참회원'이라 불린다)은 대웅전을 배후에 두고 마치 감싸듯이 서있는데, 2층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탁 트여 있어 어깨를 툭 내려놓고 앉아있을 만한 곳이다. 뒤로 대웅전과의 사이에 넓은 터에는 연등으로 촘촘하게 햇빛이 가려져 있어서 안온한 느낌을 준다. 기둥에 등을 기댄 채로 앉은 어머니의 맞은편에, 나도 걸터앉은 채 책을 펼쳐 놓고 있었다. 바람은 선선했고, 흔들거리는 연등 사이사이로 빛이 스치듯 들어오고 있어서 그대로 보고만 있어도 될 듯싶었다. 어머니는 엷은 졸음에 빠져 계신 터라 나도 조용히 책에만 집중했다.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은 조용히 합장을 할 뿐 입을 열어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풍경 소리가 때때로 들려왔다. 어머니는 2층 난간에서 멀리 바라보며 앉아 있는 시간을 좋아하셨다. 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가늠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췌장암은 지나치게 공격적이어서 진통제가 없이 버티기는 어려웠다. 먹는 약으로는 효과가 미진하여 진통 패치를 붙여야 했는데, 졸음 사이사이에 선선한 바람이, 스치듯 흔들리는 햇빛이 토닥거리길 바랄 뿐이었다. 

 안에 있는 '나'는 소설을 읽고 있지만, 조금이나마 통증을 삭이고 있던 어머니에게 마음이 쏠려 있다. 2년이나 지나 다시 읽은 소설은 재기 발랄한 상상력으로 통통 튀고 있는데, 그때의 '나'는 마치 경전을 읽듯이 글자를 퍽퍽하게 튕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작가의 이름과 소설의 이름뚜렷하게 기억하여, 작가의 소설을 일부러 찾아 읽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잠시 두었다가 다시 읽어보라고 토닥토닥해주었던 모양이다. 애써 참는 '나'는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던 듯싶다.


2번의 '나'

윤고은 작가의 소설 중 두 번째 읽은 책은 '부루마불이 평양에도 있다면'이다. 하하하.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이다. 아니... 평양에 부루마불이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다 읽은 책은 목록에 기록해두고, 그중에서도 필요한 경우엔 초서를 하는 습관이 있어서 기록을 찾아봤더니, 목록에는 없는 책이다. 아. 분명히 읽었는데...

도서관 대출목록에 있었다. 그러니까 대출은 해놓고선 다 읽지 않고 덮어두었다가 냉큼 반납한 것이다. (이런 재치 넘치는, 상상력의 보물 같은 책을 쓰는 작가의 책을 그냥 반납해버리다니...)

그때 함께 대출했던 책들은 읽은 책 목록에 있다. 보통 7권을 대출해오는데, 나머지 6권은 모두 경제/경영이나 마케팅. 직무에 관련된 책들이다. 아! 그때의 '나'는 엄청 바빴던 것이다. 머릿속이 엄청 바빠서 빈틈이라곤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머지, 이렇게 할 일 많은 시국에 소설 따위를 읽어선 안되지, 하고 덮어두었던 것이다.

소설 읽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2번의 '나'는 왜 그렇게 바빴을까? 소설을 '따위'라며 격하하는 오만함은 무엇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과잉이었을까?


3번의 '나'

소리 없는 풍경들이 무게를 온통 잡아끌었던 모양인지 1번의 ''는 작가를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으로 제멋대로 규정했으면서도 3번의 '나'는 그저 해맑게 웃고 있다. 완전히 무장을 해제한 채로 작가와 함께 지하철 여행을 하고 있다. 왕복 3시간이면 지칠 만도 한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러면서도 2번의 '나'를 완전히 보내버리진 못했다. 가끔 책장의 중앙에서 노려보듯이 눈빛을 빛내고 있는 읽어야 할 책들, 경제/경영, 자기 계발서들과 눈싸움을 한다. 그래도 쉽게 지진 않는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다가, 흥, 네까짓 것, 제목만 봐도 대충 안다고. 추임새를 넣고 다시 지하철 여행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그 해 여름을 넘기지 않고 돌아가셨다. 여름을 넘기지 못하신 것이 아니라 넘기지 않으셨다고 확신한다. 어머니는 이 별에 불의의 사고로 불시착하였으므로, 60년 넘게 사고 수습을 하느라 좌충우돌했지만, 결국 돌아가야 할 별을 찾았으므로 총총 떠난 것이다. 가야 할 별로 돌아가셨으니 나는 그저 가끔 추억할 뿐이다.


나는 주 5일, 가끔은 그 이상 2번의 '나'로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 1번의 '나'로 소리 내지 않고 가늠하지 않으려 참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3번의 '나'를 만나는 아주 가끔의 순간이 되면 양팔 활짝 벌리고 고개를 젖히고, 온전히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 잠깐의 노력이 1번과 2번의 '나'에게도 숨통을 틔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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