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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Jun 27. 2020

복철지계(覆轍之戒)_실패의 환기①

후유증 인식하기

복철지계(覆轍之戒)

먼저 간 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고 경계(警戒)함

실패(失敗)에서 교훈(敎訓)을 얻음



실패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물론 실패와 한축을 이루는 극복의 이야기도 있다. 다시 한걸음 나아가는 미담이니 처음부터 좌절과 번뇌를 염두에 두지 않으시길 바란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바라건대, 실패와 극복의 과정이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져서 당신의 실패가 그저 훈훈한 옛이야기 정도가 되었으면 한다.



Chaper 1. 자각하기


2012년 1월,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엄동설한이었지만 마음은 뜨거웠고 여전히 30대이니 해볼 만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면서 경험한 여러 번의 실패가 늘 이런 느낌이었다.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버텼다. 무려 4년이나 버텼다. 사무실을 송파의 공동 사무실에서 하남의 창고로 옮겼으며, 제주도로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이주하면서까지 버틴 세월이 4년이나 되었으니 이만하면 막무가내였다.

망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내가 한 일은 '타협'이었다. 인내심과 성실함만 갖추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수가 바로 '타협'이다. 주춤주춤 물러섰다. 씀씀이를 줄이고 관계를 좁혔다. 그렇게 나아가지 못하고 4년, 그저 버텼다.


불현듯 여기서 그만해야 한다고 인정한 날, 혼자서 마시도 못하는 술잔을 비웠다. 드라마를 보다가 혼자 울컥울컥 넘어오는걸 간신히 삼킨 날이었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였다.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회사 조직 생활을 이탈한 선배가 후배에게 말하고 있었다.

"거긴 전쟁터지? 나오면 지옥이야"


'그래 다시 돌아가자.' 그렇게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때도 시작할 때처럼 겨울이었다. 제주의 겨울은 엄동설한이 아니라 바람에 시달리는 계절이고, 그 해 바람은 많이도 불었다. 딱 마흔이 된 해였다. 불혹의 첫 해, 바람에 많이도 시달렸다.

돌아가는 일이라고 쉬웠을까. 그 뒤로 봄을 거치고, 여름이 지나도록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구인광고를 검색하는 일과를 보냈다. 카페와 도서관으로 전전하며 그저 기다렸다. 인내심과 성실함이 또 발휘되었다. 가진 게 그뿐이니 어쩌랴.

천만다행, 해를 넘기지 않고 반년만에 다시 회사 생활로 복귀하게 되었다. 첫 직장과 같은 MD 직무에 채용되어 경력이 이어졌으니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2015년, 9월 가을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를 채용한 회사는 드라마 '미생'의 배경이 된 바로 그 건물로 이전했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지났다.


문득 생각해보니 2012년 겨울, 망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기간, 주춤주춤 물러서기만 했다. 최선을 다해 제자리를 지킨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나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실패가 이리도 깊은 내상을 남겼다는 사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아가지 못한 채 5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마흔 중반. 서서히 무너지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북극이 서서히 녹고 있어도 인간들은 여전히 지구를 파헤치고 있으니 애써 외면하는 초연함은 인간의 동물적 본성인 걸까?


그럴 리가. 그저 지킨다고 지켜지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주변의 상황은 더욱 나빠지게 마련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다는 것은 사실 꽤 많은 의지와 열정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후유증을 '인식'하는 것이다. 실패의 무기력함에 잠식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먼저이다.


내가 성장하지 않고 늙기만 했다는 사실을 자각한 때는 작년이다. 느꼈지만, 그 사실이 딱히 충격적이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 그랬구나' 그저 무덤덤했다. 일상이 그랬다. 무감각과 무덤덤. 드라마에 나오는 중년의 불륜을 보며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은 아직 피가 뜨거운가 보다' 불륜도 체력이 좋아야 하는 건데.

근육량이 줄면 남성호르몬도 줄어든다고 해서 잠깐 개인 PT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까짓 호르몬 줄어들라지.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야' 하는 생각에 3개월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사실 퇴근하고 늦은 밤에 꾸역꾸역 헬스장을 찾으면서, 이 마저도 억지로 해야 하나 싶어서 그만두었다. '나중에 재미있게 할 수 있을 때 하자' 그럴 리가. 재미있는 나중이란 오지 않는다.


망했다는 인식도 불현듯 찾아왔고, 다시 돌아가자는 마음도 불현듯 찾아왔었다. 그저 늙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도 불현듯 찾아올까? 안이하게 생각했었다. 실패가 남긴 후유증의 결과는 그저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이 아니라 심대한 타격으로 찾아왔다.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의 편두통을 동반한 목디스크였다. 거의 반년에 가까운 치료를 받고 나서야 회복되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 다리가 저려와서 밤에 자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그제야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왔다. 이번엔 허리디스크였다.


온몸에 충격이 쓰나미처럼 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 이건 불현듯 온 게 아니다. 된통 얻어맞고서야 알아차렸으니 이게 무슨 깨달음이란 말인가. 그저 물러서기만 하며, 좁히고 줄어든 관계에도 외롭지 않다며 자족하는 무기력함이 마음뿐 아니라 몸도 망가뜨리고 있었다. 체념으로 인한 노화는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과정과는 전혀 다르게 '마음부터' 늙게 만들었다.


그렇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긍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그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차라리 울음이라도 터뜨리는 편이 나았다. 그저 꾹 참고 무덤덤이 담대한 용기 인양 착각하지 않아야 했다.

그저 참다 보니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버리지 않았는가. 무려 8년이다. 인내심은 그럴 때 발휘하는 미덕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이다. 자책은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이라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적어도 실패 극복의 1단계에는 도달했기 때문이다. 실패가 아팠음을 인정하자 왜 실패했는지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애써 외면하던 상처에 이제야 약을 발라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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