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터지고, 런던에서 반년 동안 백수로 지내고 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카탈루냐어 공부였다.
아무래도 인생에서 이렇게 한가해질 수 있는 시기가 이때 아니면 더 나이가 들고 나서 일 것 같아서 하늘이 준 찬스로 여기고 카탈루냐어를 시작하였다.
아마 한국에는 이 언어의 존재 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카탈루냐어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바르셀로나가 수도)의 주된 언어이며, 보통 스페인어의 방언 정도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슷한 단어들이 많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언어이다.(카탈루냐 출신 사람들은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를 둘 다 유창하게 할 줄 아는 바이링구얼인 경우가 대부분)
내가 이러한 카탈루냐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남편이 카탈루냐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는 카탈루냐에 대해 전혀 몰랐고, 남편을 통해 하나둘씩 알아가던 상황이었다. 반면 남편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나를 만나기 전에도 몇 번이나 서울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었다.
연애를 하고 약 1년쯤 지났을까, 남편이 크리스마스에 같이 자신의 고향인 바르셀로나에 가자고 하여, 가기 6개월 전쯤 비행기표를 끊고 첫 유럽여행에 들떠있었다.
모든 카탈루냐 인들이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남편으로부터 듣고, 바르셀로나에 출발하기 3개월 전부터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렇게 스페인어로 간단한 회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나는 남편의 가족들을 만나서 나의 스페인어 실력을 뽐낼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나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크리스마스에 나를 포함해 부모님 두 분과 아들 셋, 대가족이 다 모여 식사를 하는데, 대화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전부 카탈루냐어였다.
잘은 몰라도 이방인을 위해 스페인어로 대화해주지 않을까, 은연중에 기대를 했었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고, 옆에 앉아있던 신랑(당시엔 남자 친구)은 1년 만에 만난 가족이 너무 좋았는지 옆에 앉아있는 나를 한 번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일본에서의 무용담을 떠들어댔다.(남편은 가족 중에서도 말이 제일 많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물어보면 다 내가 아는 이야기란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쓸쓸함을 느낀 크리스마스였다. 2시간이라는 긴 식사 중에 사람들은 한두 번 나에게 말을 건넬 뿐이었고, 나는 그냥 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앉아있었다. 분명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지내는 크리스마스인데 내 안의 쓸쓸함은 일본 유학시절 나 홀로 영화를 보면서 지내던 크리스마스보다 더 슬프게 느껴졌다.(물론 남편과는 그다음 날 이야기해서 더 나를 배려해 달라고 부탁했고, 남편은 이제 조금은 사명감을 가지고 통역을 열심히 해준다)
그때는 참 야속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아무리 바이링구얼이라 해도, 한 평생 카탈루냐어로만 대화해온 가족인데, 1년 만에 만나 갑자기 스페인어로 바꿔서 대화하는 것도 어색할 듯하고, 갑자기 나타난 동방의 여인(?)과 딱히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기가 수월하지 않았을 것도 같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남편의 형제들과도 친해졌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나도 식사 중에 배운 적이 없는 카탈루냐어지만, 많이 들어봐서 아는 단어가 나오면 거기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곤 했다.
그래도 문제는 내가 너~~ 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도 아주 잘하는 게 아니니, 바르셀로나에 갈 때마다 남편이 있어야 하고, 가족들과 있을 때 신랑을 통해서 남들보다 한발 느리게 소식을 접하는 것도 참 답답했다.
카탈루냐인과 결혼을 한 이상, 1년에 한 번 이상은 바르셀로나에 가게 될 텐데, 이렇게 불편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백수가 되자마자 스페인어 혹은 카탈루냐어를 배워야겠다고 다짐을 한 것이다.
짧은 고민 끝에 세상에서 2번째로 많이 쓰이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카탈루냐어를 배우기로 선택한 이유는, 남편의 가족들과의 소통 때문이다.
스페인어를 선택한다면, 카탈루냐의 독립을 간절히 기원하는 가족들에게 프랑코 독재 때 카탈루냐어를 완전히 없애려 한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라고 압박을 주는 게 되니 그건 또 싫었고(한국인으로서 일본의 한글 몰살 정책이 생각나 더욱 감정이입이 된 것 같다) 나도 가족의 일부로써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카탈루냐 문화와 언어를 더욱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은 운 좋게 한국어를 하는 카탈루냐어 선생님을 온라인으로 알게 되어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하고 있고,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가면 좀 더 가족들과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