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탕 Nov 19. 2020

우리 사이, 공통 국어는 0개

카탈루냐 시부모님들과의 첫 만남(2)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고,


그렇게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시부모님과 뜨겁게 볼 뽀뽀 인사를 한 뒤,


시부모님은 나에게 어색해할 시간도 주지 않으시고,

남편(당시 남자 친구)이 오기까지는 2시간이나 남았으니 공항 안에 카페에 가자고 내 손을 이끌었다.

나는 기내식을 배가 빵빵 해질 정도로 먹은 상태였으나, 뭐라도 먹어야 어색함이 덜 할듯하여 어머님이 권해주신 하몽이 들어간 스페인식 샌드위치를 시켰고,

이 날을 위해 3개월간 공부했던 스페인어로 커피를 주문했다.


긴장한 상태로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일본어를 하시는 거였다.

아버님 : 日本語ちょっとだけしゃべれます。(일본어 조금 할 줄 알아요)


????

이게 무슨 상황인가 ㅋㅋㅋ

내가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동안 아버님은 3개월 동안 일본어를 공부하신 건가??

(알고 보니, 유도선수 생활을 조금 하신 아버님은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 등 5개 국어 이상 구사할 줄 아는 수재이셨다.)

책장 위에 가득한 아버님의 유도 트로피

그렇게 짧게 일본어로 인사를 나누고, 아버님은 부끄럽고 어색하셨는지 남편을 기다린다며 게이트로 가셨고,

어머님과 내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해 주셨던 아버님이 없어지자, 조금 불안감을 느끼던 그 찰나.


어머님이 막무가내로 계속 스페인어로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하셨고,

그것은 공통 언어가 0개인 나와 어머님의 기이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었다.


계속 어머님이 말씀하시는데, 중간중간에 영어랑 비슷한 단어는 끼워 맞춰 듣고,

그러고도 모르겠는 말은 그냥 어투로 미뤄 짐작해서 짧은 스페인어로 대답을 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 번도 말이 안 통하는 외국어로 이렇게 오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었나..??

어머니가 수다를 좋아하셔서 그런가, 우리의 대화는 비록 스무스하게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어찌어찌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있었다.


지금도 우리 시어머니랑은 제일 말이 안 통하지만, 시댁 가족 중에 어머니랑 제일 대화를 많이 나눈다.

그리고, 어머니의 무대뽀식 대화법(그냥 스페인어로 무작정 밀어붙이기) 덕에 스페인에서 일본으로 돌아갈 무렵엔 항상 스페인어가 많이 향상되어 있었다. (역시 외국어는 실전이다ㅋㅋ)


지금도 미인이신 울 시엄니

정신없이 어머니랑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남편이 도착했고, 눈물겨운 세 가족의 상봉은 여태껏 내가 봤던 어느 모자 상봉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첫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카탈루냐어를 배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