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을 마치고, 아빠와 같이 꽃장식이 가득한 클래식 카를 향해 걸어갔고, 근사한 양복을 입은 나이 지긋하신 기사님과 인사를 한 뒤 차를 탔다.
한껏 들뜬 마음도 잠시, 출발을 하려 하는데 아뿔싸...
시동이 안 걸린다....?
긴장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한 기사님이 나에게 계속 설명을 하였지만, 내 짧은 스페인어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아빠와 나는 이 비현실 적인 상황에 어찌할 줄을 모르는 상태였다.
차가 완전히 퍼진 듯하였다.
신랑이 폰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고, 유일한 믿을 구석인 동생에게 신랑한테 이 상황을 좀 말해달라고 하니, 이미 신랑 입장을 준비 중이고 식이 진행 중이여서 설명을 할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오 마이 갓.. 2차 멘붕
왜 신부가 도착도 안 했는데 먼저 시작하나요ㅋㅋ
이 산골에 택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앞이 깜깜해진 그 순간.
호텔 식당 손님 중에 나를 축하해주었던 한 금발의 중년 여성이 고장 난 차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중년 여성분 : Hablas Español?(스페인어 할 줄 아니)
나 : No, solo un poco(진짜 조금밖에 못해요)
중년 여성분 : English?(영어는??)
나: YES!!
예사롭지 않은 영어 발음을 가졌던 그 여성분은 알고 보니 캐나다인으로 이 곳에서 남편을 만나 스페인에 정착해 살고 계신 분이었다. 조금 뒤에 그분 남편이 와서 기사님과 함께 차를 보더니, 아무래도 차가 완전히 고장 난 것 같으니 자신들의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너무 당황했던 아빠와 나는 얼떨결에 그분들의 차에 탔고, 알고 보니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녔던 터라 차는 온갖 먼지와 흙에 뒤덮여있었다.
하지만 나는 경운기를 타고 가더라도 꼭 식장에 가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신부니까! ㅋㅋㅋ
새하얘진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신랑 생각도 잠시,
차를 타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황당해서 아빠와 나, 그리고 중년 부부도 웃음이 터졌다.
그제야 통성명과 각자 소개를 하고, 너무 재미있다며 서로 이런 추억을 남겨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식장에 도착을 했다.
꽃장식으로 가득한 빈티지 올드카를 탄 신부를 기다리던 식장 스텝은, 처음에 더러운 낡은 차를 보고는 관광객인 줄 알았는지 우리가 탄 차를 제지하였다. (나였어도 그런 차에 신부와 신부 아버지가 타 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을 거 같다)
WE HAVE THE BRIDE!!(우리 차에 신부가 타있어!!!)
중년커플이 외치자, 식장 스텝이 차 안을 확인하더니 박장대소를 하고 우리를 들여보내주었다.
식장에 들어서자, 그 순간 남편이 입장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신부 입장 몇 초를 남기고 나의 결혼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순간을 영화 같은 순간이라고 하는 걸까,
말로만 듣던 그 순간이 나에게도 이 결정적인 순간에 선물같이 찾아왔다.
입장을 하는 내내 아빠도 나도 미소 지으며 입장을 했고, 그 와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도 못 할 남편은 혼자 감격을 받아 훌쩍거리고 있었는데, 평소와 같았으면 나도 같이 울었겠지만, 방금 있었던 일과 신랑이 훌쩍거리는 모습이 오버랩되어, 그게 너무 코미디 같아서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신부 입장중에..)
그렇게 우리 결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