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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탕 Sep 30. 2020

영국의 노숙자들

영국 시민들과 노숙자들의 공존법

영국에 오기 전, 나에게 노숙자의 이미지는

가난, 위생적이지 못한, 도시의 무법자...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일단 다가오면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상대방이 혹시라도 말을 걸더라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성의 입장으로써, 노숙자(특히 남성분) 다가올 때 거의 반사적으로 공포감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다 못해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 되지 않나?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건 진짜로 도와주는 게 아니야
돈을 줬다가 이 돈으로 나쁜 짓을 하면 어떡해??



부끄럽지만, 한때는 이런 생각을 나 자신 나름의 신념이라고 여기고, 혹시나 노숙자를 보게 되어도, 그냥 피하기만 했고 행여나 눈이 마주칠까 앞을 지나갈 때면 저 멀리 쳐다보며 빠르게 걷기 일수였다.


런던에는 노숙자가 많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만도 한 대여섯은 되는 거 같다.


영국인들은 말을 걸어오는 노숙자들을 보면, 무작정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준다.

거의 십중팔구 돈을 달라는 이야기이고, 대부분 정중한 거절로 이어지지만, 슈퍼 앞에서 구걸하는 노숙자를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때론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같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는 나 같은 이방인의 눈에는 아주 기묘하면서도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나도 기회가 된다면 따뜻한 이웃이 되어주어야지 라고 마음을 고쳐먹는 계기가 되었다.


몇 달 뒤, 남편과 둘이서 런던 근교의 Stratford apon Avon이라는 셰익스피어 생가로 유명한 작은 마을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도 노숙자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생가로 유명한 Stratford apon Avon


배도 고프고, 피곤한 나머지, 관광을 빨리 마치고 영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크림 티를 마시러 한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날씨가 너무 좋아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기로 하고, 들뜬 마음으로 따뜻한 스콘과 티를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페 앞에는 노숙자 아저씨 한분이 계셨고, 내 앞에는 다 먹기엔 너무나 큰, 입도 대지 않은 스콘이 있었다.

아저씨는 며칠을 식사를 못하신 듯 굉장히 야위어 보였고, 나는 그런 아저씨를 보면서도 이 스콘을 아저씨께 드려도 될까 망설여졌다.

(입도 대지 않았고 앞서 먹은 스콘은 앞접시에 덜어먹었기 때문에 괜찮을 줄은 알았지만, 아저씨를 위해서 시킨 음식도 아니었고, 행여나 찝찝해하실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망설임도 잠시, 스콘을 새 냅킨에 싸서, 남편을 앞세워 아저씨께 스콘을 건네었다.


나: We haven't touched this food and If you don't mind we want to give this scone for you. You can totally reject it if you don't want it.( 입 안 댄 스콘인데, 드리고 싶어서요. 혹시 안 내키시면 거부하셔도 됩니다)

아저씨: I will accept it thank you very much (받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순식간에 스콘을 허겁지겁 다 드셨고, 나는 그런 아저씨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아.. 스콘은 차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너무 목마르시겠다


그 순간, 옆에서 보고 있던 영국인 가족이 내 마음을 읽은 걸까?? 노숙자 아저씨 곁으로 다가가서 혹시 마시고 싶은 음료가 있는지 물어봤고, 아저씨에게 차 한잔을 사드리는 것이었다!

그 가족에게 엄지 척을 보내고, 우리는 런던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우리가 건넨 건 스콘 하나였지만, 노숙자 아저씨와 그 영국인 가족에게 더 큰 깨달음과 좋은 하루를 선물로 받은 기분이 들었다.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뜨끈뜨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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