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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베이스볼 Aug 29. 2016

해커의 여름 휴가

닥터베이스볼



올해도 해커의 공은 매섭다. 명실공히 NC 대표 선발 투수로 4월 1일 개막전에 출장하며 시즌 출발을 알렸다. 비록 첫 경기에서는 승패 기록을 하지 못 하였지만 두 번째 경기부터는 내리 승리 투수가 되었다. 특히 4월 30일 롯데 전에서는 6이닝 동안 삼진을 열 개나 잡으며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5월 12일 한화전까지 해커는 시즌 6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로 그는 니퍼트와 함께 다승 부문 공동 선두로 올랐다. 흐름대로 간다면 전년보다 더 빨리 두 자릿 수 승수를 달성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날 이후로 해커는 갑자기 마운드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사진1/ 한국생활 4년차를 맞이한 해커(사진=NC다이노스)]





사유는 부상 점검때문이었다. 5월 18일, 해커는 넥센 전 등판을 앞두고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였다. 에이스의 부상은 팀 전력에 큰 손실을 미치는 법이다. 정확한 검사를 위하여 스태프는 해커를 1군에서 말소시켰다. 헌데 검진 결과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팔꿈치에 별다른 염좌나 염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의료진의 소견이었다.



통상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먼저 치료와 회복에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한다. 이후 트레이닝에 필요한 일정을 짜고 재활 훈련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복귀 시기를 가늠하는데 해커의 경우는 이러한 플랜을 세울 수가 없었다. 통증 원인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검진 이후에도 해커는 여전히 팔 사용이 불편하다고 했다. 



원인이 없기 때문에 몸 상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선수를 기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김경문 감독은 그를 1군으로 콜업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휴가'를 주었다. 달력은 6월로 넘어갔다. 감독은 선수에게 복귀 시기를 맡기겠다고 하였다. 해커의 휴가는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사진2/칼리만큼 귀여운 둘째가 태어났다(사진=NC다이노스)]






해커는 2013년, NC의 1군 데뷔에 맞춰 한국을 처음 찾았다. 경험없는 선수들이 수두룩한 신생 팀에서 외국인 선수에게는 스페셜 조커와도 같은 역할이 부여된다. 하지만 해커의 KBO리그 진입은 험난하였다. 투구 과정에서 짧게 멈칫하는 동작이 부정 투구로 오해를 사는 것이다. 해커 등판 때마다 상대 팀에서는 문제삼아 어필하였다. 심판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선수는 흔들렸다. 어필 이후에 실투가 나오고 경기 주도권은 상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NC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투구 동작에서 시간을 끄니까 1루 주자의 도루 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포수가 빨리 판단하고 2루로 송구하여도 주자가 공보다 먼저 베이스를 밟았다. 주루 플레이를 선호하는 한국 야구에서 해커의 투구는 상대가 파고들기 좋은 약점이었다. 첫 등판 이후로 세 경기 연속 패전을 기록하고 해커는 결국 1군에서 말소되었다. 



해커는 미국에서 10년 간 야구를 하였다. 이를 높게 평가받아 고액의 계약금과 대우를 받고 한국으로 온 것이다. 몸값에 걸맞는 성과를 당장 보여 주어야 했다. 낯선 환경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적응에 실패하고 자국으로 돌아갔다. 해커와 함께 NC로 온 아담 윌크도 그랬다. 기대를 모았지만 그는 불성실한 자세를 일삼다가 시즌 중간에 아웃되어 한국을 떠나야 했다.







[사진3/입단 당시 에릭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추후 등록명을 변경하였다(사진=NC다이노스)]





해커는 변화를 선택했다. 시즌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외국인 선수의 2군행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커는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을 깨닫고 연구하였다.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따르고 문제가 되는 '자신의 습관'을 수정하였다. 그렇게 2주 만에 다시 오른 1군 마운드. 그는 논란이었던 동작을 말끔히 지우고 나타났다. 단 시간에 이룬 변화는 그가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해커는 첫 시즌을 4승 11패로 마쳤다. 두 번째 시즌은 8승 8패. 그리고 해커의 존재감이 폭발한 세 번째 시즌이 다가왔다.



2015 시즌을 앞둔 해커는 김경문 감독을 찾아갔다. 어떻게 해야 자신이 팀에서 더 잘 할 수 있는지 감독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 김 감독의 조언이 통했던 걸까, 드디어 해커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8월 27일 한화 전에서 로저스와의 대결. 해커는 8이닝 동안 114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 2사사구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16승에 성공하였다. 마침 이 날은 김경문 감독이 통산 700승을 거둔 경기이기도 했다. 해커는 인터뷰를 통해 '감독님을 존경한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표하였다.





[사진4/빛나는 해커의 골든글러브(사진=NC다이노스)]


 



지난 해에 해커는 31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였다. 성적은 19승 5패로 단독 다승왕에 올랐다. 이외에도 승률 1위, QS 1위, WHIP 1위, 피안타율 1위, 평균자책점은 3.13으로 2위를 기록하였다. 



해커는 언제나 자신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해왔다. 2016 시즌을 앞두고 NC 마운드에는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은퇴한 것이다. 외국인 선수라는 다른 상황을 떠나 팀 4년 차로서 해커는 실력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어린 선수들의 맏형이었다.



동시에 지난 해의 활약이 일순간 반짝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하였다. 해커는 늘상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올해도 제 몫을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팔꿈치 통증과 컨디션 난조는 그를 심리적으로 위축시켰을지도 모르겠다. 



힘든 상황에서 가족의 빈 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출산을 위해 그의 아내와 딸은 미국에 있었다). 해커의 한국 생활에는 언제나 가족이 함께하였다. 해커가 등판하는 날이면 아빠 이름이 새겨진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칼리(딸)가 마산야구장을 놀이터처럼 돌아다녔다. 타지에서 처음으로 홀로 보내는 시기가 어쩌면 버거운 것이 아니었을까.






[사진5/2015시즌 올스타전에 출전한 해커(사진=NC다이노스)]




그래서일까, 가족과 함께 긴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해커는 100퍼센트 충전한 모습이었다. 최근 등판한 두 경기에서 그는 모두 8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해커는 항상 팀의 승리를 위해선 선발 투수가 긴 이닝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 해 왔다. 시즌 후반기에 NC는 불펜 소속이었던 최금강과 구창모가 급히 선발로 전환되었다. 아직 이들이 긴 이닝을 던지긴 어려웠고 자연히 불펜의 부담이 증가되었다. 때문에 해커의 복귀가 더욱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지난 목요일 경기에서 해커는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8이닝 동안 5피안타, 볼넷 하나, 7탈삼진, 1실점하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경기 전 김경문 감독은 해커의 구속에 주목하였다. 이 날 해커의 직구 최고 스피드는 145km. 변형 직구도 대단하였다. 140km대 싱커와 커터를 뽐내었다. 이외에도 커브,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며 한화 타선을 제압하였다. 이 날 경기로 해커는 시즌 10승을 거두어 지난 해에 이어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투수가 되었다. 부지런한 우리의 에이스, 시즌 마지막까지 해커가 NC의 행진에 뜨거운 화력을 지펴주길 기대한다.






[별첨] NC다이노스 단편다큐멘터리 '공감, 그 작은 이야기' 해커편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보길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M0JKWxcW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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