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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로살롱 Nov 15. 2023

빈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걸

집순이 권태기를 극복하고 싶은 집순이


사진 속 이미지는 빈대는 아닙니다^^



요즘 빈대가 다시 유행처럼 출몰하고 있단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파리에 이어 서울에서 빈대라니. 그 옛날 초가삼간에 살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2023년에 실재하는 스토리라니,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나에겐 빈대가 그리 낯설지 않다. 나에겐 트라우마 같은, 내 인생에서 절대 잊힐 수 없는 이름하여 '시카고 빈대 사건'이 그것이다.

근 십년이 지난 일이다. 2013년 우린 미국 시카고에 살고 있었다. 미국집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져 있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자연 친화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부실하기도 하고 벌레에 굉장히 취약하다. 우리집은 아파트였고 다행히 잘 지어진 벽돌집이라 벌레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아이가 18개월 무렵이라 아장아장 걷고 뛰고 할 즈음, 아이를 보러 한국에서 아이의 할머니, 즉 시어머니가 오셨다. 와 계신 동안 미국 여행을 시켜드릴 겸 우리도 여행을 즐길 겸해서 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뉴멕시코였는데 시카고로 족히 18시간은 걸리는 먼 거리였다. 산타페도 가고 인디언 마을도 구경하고 여러 곳에 머물면서 우린 새로운 곳의 멋진 자연 경관과 색다른 문화와 음식들을 경험하며 아주 즐거웠다.

그렇게 거의 일주일 가까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순간부터였다. 아이와 나는 같이 자고, 어머님과 남편은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잤는데 유독 아이와 나만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20여군데 넘도록 붉게 물려있고 간지러웠던 것이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일단 아기가 발라도 되는 약들을 발라 줬다. 부드러운 아기 살이 붉게 달아오르고 간지러워 긁는 게 안쓰러워 걱정이었다. 그렇게 이틀 정도 지났을 때 밤에 자다가 문득 간지러워 깨서 방에 불을 켰는데, 으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 미처 불빛에 피하지 못한 벌레들이 미친듯이 숨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가 자던 매트리스 위는 하얀색이라 유독 눈에 잘 띄었다. 일단 아이를 다른 침대에 눕히고 정신을 가다듬고 아이 옆에서 벌레를 잡으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약간 회검정빛 또는 회갈색빛에 종잇장처럼 납작하고 입은 뾰족하게 생겼다. 손으로 누르면 찍하고 죽는데 피가 찍하고 나온다. 내 피와 내 아이의 피를 이런식으로 빨아먹었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니 이것은 베드 버그, 즉 빈대가 맞았다. 아 제발 아니길 바랬는데, 이제 사태를 수습할 일만 남았다. 그날부터 불면의 날들이 이어졌다. 깜깜한 밤이 되면 매트리스 사이사이에 숨어 있던 빈대들이 기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매트리스를 빼고 바닥에서 자면 되지 않겠냐고? 노노, 모르시는 말씀. 미국 집은 나무로 되어 있어서 바닥 나무 사이사이에 빈대들이 끼어 있다고 한다. 언제 어디에서 나올지 모른다는 것. 그것이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어디서부터 빈대가 시작되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뉴멕시코 여행길 중 마지막 숙소가 가장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 곳의 자연 환경은 언제 벌레에 노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내추럴했기 때문. 그런 곳에 여행을 가면 절대 바닥에 트렁크를 내리지 말고 집에 들어오기전 완벽히 소독을 마쳐야 한다고,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는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모두 혈안이 되어 빈대 퇴치에 나섰다. 약을 뿌려봤자 그때뿐이고 아기가 있어서 독한 약은 금물. 방법은 오직하나, 뜨거운 스팀과 열로 죽이는 것 뿐이었다. 그때부터 집안의 모든 침구와 패브릭을 빨아서 건조기에 말렸다. 매일 빨래를 돌리고 돌리고, 스팀청소기와 드라이어를 동원해 매트리스에 붙은 빈대를 없애기로 했다. 바닥도 틈새마다 스팀 청소기의 열을 살포해 어딘가에 살아 있을 빈대를 없앴다. 시어머님은 그 방면으로 아주 특출나게 일처리를 잘하는 분이시라 정말 밥먹고 아이와 노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스팀을 하는데 할애하는 분이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우리가 물리는 현상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예 없애는 건 불가능한 것인가. 어딘가에 늘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리를 집어 삼켰다.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 해야하는지 그것도 알수 없었다. 결국 멀쩡했던 스팀 청소기는 매일매일 너무 열심히 일을 한 탓에 과로사를 맞이하고 말았다. 매트리스도 결국엔 그냥 버렸다. 매트리스는 버리는 게 답이라는 말을 이미 많이 들어서였다.

우리가 빈대에서 탈출한 건 빈대가 없어져서가 아니라 우리가 집을 버리고 탈출했기 때문이다. 빈대 때문은 아니었지만 우린 미국을 벗어나 체코로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고, 빈대와의 전쟁 막바지와 이사가 겹쳐 결국엔 우리가 도망쳐온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빈대와의 전쟁은 막이 내렸다. 빈대에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끔찍함을 모른다. 나를 갉아먹는 듯한 두려움. 왜 빈대 잡느라 초가삼간을 태웠는지 그 말을 알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빌붙는 사람을 일컬어 '빈대'라고 부르는데 그 말이 얼마나 나쁜 말인지 당해보면 알 것이다. 지금 누군가 빈대를 발견했다면 즉시 없애고 그 패브릭은 세탁 후 건조기에 돌려서 빈대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게 답이다. 으, 다시 소환하고 싶지 않은 빈대의 기억. 그 트라우마는 아마 평생을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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