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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Dec 19. 2022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눈이 내린다.

겹겹이 쌓인 눈꽃 한 다발 위 각인되는 나의 발자국은 익숙한 듯 그러나 새롭다. 올해는 참 많이도 왔다.칙칙폭폭 눈 기차 한번 다녀가자 단숨에 거북이가 되어가는 느림보의 세상. 나뭇가지에 쌓인 눈, 마치 가로등처럼 세상을 새초롬이 수놓는 한낮의 새하얀 기운이 참 포근히도 느껴진다.


지난밤 한밤의 열병처럼 앓고 난 무기력증은 주말을나면서 조금은 극복한 듯하다. 좋아하는 살림 로그를 보며 청소를 하고 나서는 집안 곳곳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공간이 완성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여전히 늦고, 나는 이토록 거센 추위 속의 등원 길이 엄두가 나질 않아 아이들을 꼭 껴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독박 육아가 오래되었고, 나도 모르게 폭삭 지쳐갔나 보다.


1년 중에서 기다리는 며칠의 날. 나는 며느리니까 명절은 딱히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연초부터 이날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케빈만큼 역동적인 크리스마스 연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진다.  



나는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내왔을까.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특별히 보내왔던 것도 아니다.하물며 공연을 본다든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니었고, 어딘가에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었다. 케이크를 예약하는 일마저 번번이 놓쳐버려 집 앞 빵집에서 남은 케이크라도 사자며 억지로 사 오는 일이 태반이었고, 식사도 특별할 것 없는 식사였다. 크리스마스를 위한 플레이팅은 고사하고, 그저 소고기를 구워 와인에 곁들이는 정도가 내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출산을 하고 나서는 더했다. 아이들이 어려 어딘가 데려가기도 힘들었고, 첫째가 그나마 커서 데리고 다닐만할 때는 둘째를 임신 중이어서 술 한잔 입에 못 대었다. 그나마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트리라도 꾸미자하는 마음에 크리스마스답게 보내기 시작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추운 밤 뜨뜻한 난방으로 데워진 거실 카펫 위에서 두툼한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안고선손끝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곤 했다. 크리스마스 저녁은 언제나 그랬듯 카레였다. 배를 두둑이 채우고는 밤 열시나 되어서야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특선영화를 보다가 거실에서 한숨 잠들다 일어났을 때베란다 밖으로 펼쳐진 겨울왕국을 바라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어느새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다.

그때의 나의 어리고 하얀 동생은 지금은 아이들의 삼촌이 되었고, 젊었던 우리 엄마 머리에는 영원히 가시지 않을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언제나 늦었던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엄마 곁을 지키기 시작했고, 어릴 적 늦는 아빠가 그렇게도 그리웠던 나는 결혼이라는 독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전히 아빠를 자주 볼 수가 없다.


나이가 들 수록, 세월의 속도가 점점 빠르게 느껴진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직은 30킬로로 달리고 있지만, 점점 빨라지겠지. 어느새 다가온 연말, 기다려지는 나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매년 궁금해온 크리스마스의 눈 소식.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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