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돌보 Jun 20. 2023

올해로 8년, 너와 헤어질 결심

너와 함께 한  8년.

이제는 떠나보내려 한다.




2014년 유독 지나쳤던 겨울을 지나 봄의 문턱에 선 우리는 헤어지는 시간조차 버거워 버진로드를 걸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린 나이였다. 그래도 친구들보다는 빨리 결혼을 했으니, 느린 편은 아니라고 해두고 싶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무것도 없이 결혼을 했다. 이제 막 입사한 지 6개월이 좀 지난 그 역시 갖고 있는 돈이라고는 곧 받을 상여금이 전부였다. 반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맞춘 결혼반지가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한낱 계약직에 불과했던 나 역시 대출 여력 없는 사회생활 초짜였고, 그나마 나보다 형편이 나았던 그에게 기대어 16평짜리 원룸형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티비도 없고, 차도 없었다. 그렇게 뚜벅이 생활을 2년. 어느덧 첫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너를 처음으로.


결혼 2주년, 케이크에 초를 붙였다
결혼기념일 남편이 찍은 사진 속의 나

 

고성능 차 리뷰를 꼬박 챙겨볼 만큼 남편은 차에 진심이었다. 신혼여행으로 간 모나코에서 목격한 수많은 슈퍼카들은 우리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겠지만, 언제나 꿈은 그랬다. 내 인생, 그 언젠가 쯤 한 번은 타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정도의 슈퍼카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현실의 처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 녀석으로 결정하게 된 것은 으르렁대는 엔진 소리도 아니었고, 매끈한 외관도 아니었다. 철저히 가진 예산에 맞춘 결정이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색깔조차 우리 마음대로 고를 수도 없었다. 없는 돈으로 이 정도 되는 체급의 차를 사려면 전시차 밖에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시차가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색상마저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있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차를 받기 전까지는 생각보다 별 기대가 없었다.

기다렸던 차도 아닌데 이상했다. 처음 인도받던 날, 여전히 생생하다. 어찌나 가슴언저리가 설렜는지. 출고된 그날 저녁, 함께 마신 샴페인 그 한잔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떤 추억을 만들어 갈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자꾸만 정이 갔다. 마치 첫 만남, 그 떨림의 순간. 자주 마주치는 눈이 싫지 않듯이.




우리의 첫차는 그렇게 2년여간의 신혼시절을 함께 보냈고, 두 아이를 낳던 날 역시 함께 해주었다.

첫 아이를 기다리며 뒤뚱거리는 몸으로 남편과 함께 정성껏 세차하던 날의 추위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 산 카시트를 낑낑대며 설치하고, 미세먼지가 신생아에 안 좋다며 산 차량용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던 그 밤의 세차장. 배가 자꾸만 차에 닿아서 걸레로 닦는 건지 배로 닦는 건지 몰라 한참을 웃으며 세차하던 날,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참으로 포근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려 이 땅의 모든 곳곳을 겨울왕국으로 장식하던 날 그토록 기다리던 첫 아이가 우리 품에 와주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의 첫차와 함께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다시 도전한 취업의 난관 역시 그 녀석과 함께였다. 숱한 시험장을 함께 오가며,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도와주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취업의 순간, 첫 출근길의 설렘을 안겨주었다.

세 번의 이사와 인생 처음으로 집을 계약하던 순간을 어김없이 우리는 같이 했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곳만 갔던 것은 아니었다.


그 새벽,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초조의 밤 도로를 빠르게 달려주었고, 엄마의 병을 처음 알게 된 날, 광대 아래 지저분히 번지는 눈물로 지나친 가로등의 불빛이 흩어지는 순간, 조용히 감싸 안아주듯 조심히 달려 주었다.


어떨 땐 그 자체로 위로의 장소가 되곤 해주었다.

남편과 다투다 뛰쳐나와 오갈 데 없을 때 차 문을 열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음악을 틀고 귀를 기울이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로가 되어 나를 다독여 주는 것이다. 가끔 싸우다 거리 속을 헤매는 나를 찾기 위해 분주한 남편의 발이 되어 주기도 했다. 우리의 첫 차는 곧 우리의 결혼생활이었고, 우리의 마음을 말없이 위로해 주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언제나 곁을 내준 녀석을 이제는 떠나보내려 한다.

얼마 전부터 캠핑을 시작한 우리 가족에게 차가 어느 날부터 협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보다 큰 차를 구매하기로 결정하였고, 차 두대를 굴리기엔 우리 형편이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차를 팔고, 차를 사는 일이 핸드폰을 사는 것만큼 간단한 일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차와 함께한 지난 8년의 시절은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오랜 세월이었다. 다사다난한 우리 가족의 지난 역사가 선명한 첫 차를 떠나보낸다 하니 어쩐지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주차 딱지를 떼인 날,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가던 길, 우리 첫 집을 구경하러 가던 날의 도로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까지.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참 쉽게도 떠났다.

떠나기 전날 집 근처 셀프 세차장에 들러 아이들과 함께 구석구석을 닦으며 한참을 광 내주었다. 그러다 바보 같이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렸다. 주책맞은 눈물을 한참 참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즐겁게 물장난을 친다. 그러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붉어졌는지 모를 그의 눈가에 담긴 마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저 내 마음 같았으니까.

 

첫 시동을 걸던 그날의 기억을 여전히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부디 새로운 주인에게 단단한 두발이 되어 주기를, 때로는 지친 당신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위로의 공간이 되어주기를 가슴 깊이,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